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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머리카락 빠진 여성 노숙인을 만났다··· 위태로운 겨울의 노숙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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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상상도 못 할 곳에 숨어 계시는 게 노숙인의 특징이죠.”
지난달 8일 오후 9시쯤 서울의 노숙인 거리상담(아웃리치)을 돌던 상담원 박정한(가명)씨가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 멈춰 섰다. 화려한 건물과 탁 트인 광장, 북적이는 시민들까지 영락없이 쾌적한 도심이었다. 기자도 평소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라 의구심이 들었다. 이곳 어디에 노숙인이 있다는 걸까.
박씨의 거침없는 발걸음은 세종문화회관 옆 주차장 구석을 향했다. 그러더니 맨 끝 칸에 주차된 트럭과 담 사이에 나 있는 좁은 틈을 찾아냈다. 그 틈의 끝에, 머리카락이 다 빠진 고령의 여성 노숙인이 찢어진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다. 그는 박씨가 주는 믹스커피와 핫팩 등을 받았다.
박씨는 “이분은 최근 들어 유독 건강이 악화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 뒤인 이달 8일 기자가 다시 동행했을 때, 다행히 상태가 크게 악화되진 않았지만 손발이 새카만 채 꽁꽁 얼어 있었다.
'약자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다. '게을러서 저리 된 사람' '술 중독자들'로 여기는 혐오의 시선이 상당하다. 그러나 노숙인은 사회적 방치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경우가 많다.
노숙인 생활시설의 노숙인 7,361명 중 약 21%(보건복지부 자료)가 발달장애인이었고, 거리의 노숙인 중에서는 더 많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여성 노숙인들은 가정폭력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많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노숙인 문제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우선 서울시립브릿지종합지원센터(이하 브릿지센터)가 진행하는 아웃리치에 두 차례 동행, 노숙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유급 상담원들은 매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담당 구역을 돌며 노숙인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생필품을 지급한다. 혹시 시설 입소 의지가 있는 노숙인이 있으면 연계도 적극적으로 돕는다.
기자는 서울 충정로에서 시작해 시청, 을지로입구, 종각을 거쳐 광화문까지 도는 도보 2시간 코스에 동행했다. 노숙인이 없는 곳은 없었다. 다만 이들은 하나같이 시선이 닿지 않을 그늘진 곳에 마치 없는 사람처럼 숨어 있었다.
서울의 3개 노숙인지원센터 중에서 강북권을 담당하는 브릿지센터에선 하루 총 60~70여 명의 노숙인을 만나는데, 대부분 거리 생활을 평균 10년 이상씩 해온 만성 노숙인이다. 아웃리치 담당자로 나선 임준혁(가명)씨는 “노숙 3개월을 넘어서면 거리 생활이 익숙해지는 만성 노숙 단계로 본다”고 설명했다.
아웃리치 코스의 시작이었던 충정로 굴다리 구석에도 만성 노숙인이 있었다. 폐우산과 옷가지, 침낭, 박스 등 살림살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수레에 담아 다니는 고령의 여성이다. 임씨는 이 여성을 “원래 서소문공원에 있다가 최근 들어 굴다리로 옮겨온 만성 노숙인”이라고 소개하며 “센터 무료급식소를 이용하도록 돕는 등 10년 넘게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10년 세월이 무색하게도 노숙인은 상담원과 대화를 하지 못했다. 잠에 취해 예민해져서 상담원을 쫓아내기 바빴다. 동절기 키트(11월 핫팩·믹스커피·마스크, 12월 내의·양말 추가)만 겨우 건네주고 돌아선 임씨는 “만성 노숙인 대부분이 정신 질환이 심해서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기자 역시 같은 이유로 노숙인과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기로 상담원들과 합의했다. 낯선 이의 접근조차 예민하게 반응하는 노숙인들이 돌발 행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세종문화회관 옆에서 만난 여성 노숙인 역시 한눈에 봐도 건강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홑겹 외투 한 장 겨우 걸친 몸이 앙상하게 말랐고 얼굴만 부어 눈꺼풀을 뜨기도 버거워 보였다. 그가 누운 자리 주위로 담배꽁초 수십 개가 떨어져 있었다. 남들이 버리고 간 꽁초를 주워 다시 피운 것이었다. 상담원 박정한씨는 “만성 노숙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술·담배 중독”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 달 사이 부쩍 추워진 날씨를 대변하듯 노숙인들의 거처에도 변화가 생겼다. 침낭만 덮고 잠을 청했던 을지로입구역 앞 노숙인은 어느새 텐트를 쳤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시청역 앞 벤치를 지켰던 한 노숙인은 광화문역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골판지와 비닐로 찬바람을 가렸다.
12월은 안 그래도 건강 상태가 나쁜 노숙인의 생존이 더 위태로워지는 때다.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유독 긴장도를 높여 상담을 다니는 시기이기도 하다. 담당자 임씨는 “한파가 기승을 부릴 때보다 날이 따뜻하다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는 시점에 사망자가 많이 나온다”며 “지난해 겨울에도 센터에서 살피던 노숙인 중 3명이 숨졌다”고 설명했다.
종각역 앞 불 꺼진 한 매장 앞에서 만성 노숙인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는 상담원이 찾아오는 인기척에 침낭 밖으로 팔을 내밀어 동절기 키트만 챙기고 다시 몸을 꾹 웅크렸다. 상담원 이래원(가명)씨는 “다들 시설 연계나 복지 제도 안내는 거부해도 동절기 키트는 항상 인기가 좋은 편”이라며 “그래도 추운 건 싫으신가 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들은 왜 혹독한 거리 생활을 스스로 고집할까. 임씨는 “만성 노숙인들은 거리 생활이 좋아서 선택한 게 아니라 시설 입소 등 삶의 대안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건강 문제 등 거리에서 더는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도 도움을 거부하는 이들의 의사를 '자의'라고만 여기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노숙인들의 시설 입소를 강제할 수는 없다. 노숙인 본인의 자의 없이는 센터도, 지방자치단체도, 경찰·소방도 이들의 의사에 반해 거처를 옮길 자격은 없기 때문이다.
임씨는 “응급 입원해야 할 만큼 위급한 소수 상황에만 요양시설로 인계가 가능할 뿐”이라며 “응급입원에까지 이르는 노숙인들을 보면 '그전에 한 번이라도 병원에 가봤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첫 아웃리치를 동행했던 지난달, 광화문역 입구에 위치한 쉼터 한편에서 중년의 노숙인이 배낭을 풀고 외투를 덮으며 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상담원들이 이전까지 본 적 없던 남성이었다. 다가가 이야기를 나눠보니 노숙 경험이 길지 않았다. 건설 일용직으로 근무해본 경험도 있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상담원들은 이 노숙인과 다음날 센터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노숙인이 복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데도 골든타임이 있다. 만성 노숙인이 되기 전인 초기 3개월 이내다. 초기 노숙인은 건강 상태나 본인 의지가 양호한 경우가 많아 시설 연계 등이 수월해서다. 다만 박씨는 "초기 노숙인을 발견하는 일 자체가 드문 편"이라고 말했다.
광화문역 지하 통로 쪽으로 더 걸어 들어가니 복도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잠든 노숙인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 한 명 역시 이날 처음 만난 노숙인으로, 지금까지 지인 집을 전전했다고 했다. 상담원은 이 노숙인과도 이틀 뒤 같은 자리에서 만나 시설 입소를 함께 논의하기로 약속했다.
“초기 노숙인을 만나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오늘은 두 분이나 만나셨네요.” 기자의 말에 임씨와 박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박씨는 "이렇게 만남을 약속해도 실제로 제도권 안으로 포섭되는 경우는 열에 한두 번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시설 연계가 성사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누며 아웃리치를 종료했다.
아웃리치에 두 번째 동행할 때 지난달 두 명의 근황을 물었다. 광화문역 입구 쉼터에서 만났던 노숙인은 이후 시설에 입소한 것은 물론, 자활 근로도 시작한다는 희소식이 돌아왔다. 지하 통로에서 만난 나머지 한 명도 서울시 노숙인 주거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고시원으로 인계돼 겨울을 한결 따뜻하게 나게 됐다.
"드물게나마 시설 입소를 시작으로 자립에 성공하는 분들을 보면 이분들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구나, 느끼죠." 임씨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었다. 불과 몇 달 뒤면 만성 단계로 접어들 수많은 노숙인들의 골든타임은 지금도 흘러간다.
◆노숙인, 가장 낮은 곳에
①노숙인 거리상담에 동행하다
②주소가 없으면 복지도 없다?
③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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