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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또와 21세기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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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3세기 세계제국을 이룬 몽골은 정복지에 육사(六事), 즉 6가지 의무를 요구했다. 납질(納質·볼모), 조군(助軍·정복전쟁을 도울 군대), 수량(輸糧·식량지원), 설역(設驛·역참 설치), 공호수적(供戶數籍·호구 정보의 보고), 설달로화적(設達魯花赤·다루가치의 파견)이었다. 고려에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사에 따르면 쿠빌라이는 원종 3년(1262)에 보낸 조서에 고려가 볼모와 조군, 수량에는 응하면서도 호구 정보는 보내지 않는 걸 질책했다.
□몽골은 호구 정보를 얻기 위해 묘책도 썼다. 1278년 4월, 충렬왕이 몽골에 입조했을 때 ‘고려 백성들을 편히 살게 할 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권세가들이 땅을 빼앗고 양민을 이른바 ‘처간’(處干, 왕실ㆍ왕족ㆍ사원 등의 소유지에 딸린 천민)으로 삼아 나라에 낼 세금까지 챙기는 행위를 금하라는 지적이었다. 뜬금없는 몽골의 민생안정 요구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호구 정보를 얻으려는 속셈이라고 진단한다. 처간 실태 파악을 명분으로 호구조사를 강요한 뒤, 그 정보를 받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고려는 처간 부조리를 일부 해소하면서도 호구 정보는 끝내 넘기지 않았다.
□조선 시대엔 호구 정보 조작이 성행했다. 고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은 3년마다 호구조사를 벌였지만 지방 수령들은 축소∙조작으로 일관했다. 호구가 줄어들면 사또가 문책을 당했고, 호구가 증가하면 징수해야 할 세금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실록에 ‘10분의 8할 정도가 빠진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조작은 심각했다. 학자들은 1520년 조선 인구가 공식자료엔 375만 명이지만, 실제로는 1,000만 명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 우익이 침략 정당화 논리로 일제강점기 인구급증을 내세우는 건 조선의 호구정보 조작 때문일 수 있다.
□정보 비공개는 21세기에도 문제다. MSCI는 한국의 선진국 지수 편입을 거부하며, ‘영문 공시’ 의무화가 이뤄지지 않은 걸 이유로 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통계 조작 의혹에 이어 민주노총 등의 회계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 정권과 노동계 탄압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세금 내는 유권자와 조합비 내는 노조원 입장에선 오염되지 않은 정보의 투명한 공개는 늘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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