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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하이라이트만 존재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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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는 대개 기승전결 구조를 취하고 있다. 물론 영화뿐 아니라 모든 이야기는 기승전결 구조로 되어 있다. 하다못해 라디오에서 듣는 짤막한 사연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우리는 얘기를 듣다 만 것 같은 찜찜함 없이 온전히 몰입하여 웃거나 공감할 수 있다.
본래 기승전결이란 한시에서 시구를 구성하는 방식을 뜻하는 말이다. 그중 기(起)는 시작하는 부분, 승(承)은 전개하는 부분, 전(轉)은 전환하는 부분, 결(結)은 끝맺는 부분이다. 즉 이야기를 소개하고, 갈등이 발생하고, 갈등이 고조되다가 마침내 갈등이 해소되며 마무리되는 방식이다.
기승전결의 시간 배분은 일정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갈등을 다룬 승과 이것이 고조되는 과정, 해결되는 실마리를 발견하기까지의 전의 과정을 길게 다룬다. 그래서 인물들이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그러나 요즘엔 이 갈등 자체를 제거해버리거나 극대화시킨 포맷들이 유행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숏폼으로 분류되는 틱톡 같은 영상에는 기승전결 구조는 필요가 없다. 노래로 치면 클라이맥스 부분만 듣는 것처럼 가장 재밌고 확연히 눈에 띄는 부분만 공유한다. 반대로 흔히 보이는 책 광고 마케팅에는 마치 실제로 겪은 이야기처럼 몰입도를 높여 자극적으로 묘사하다가, 뒷부분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세요'라는 허무함과 배신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이것들은 고효율로 고자극을 선사한다. 마치 빌드업이나 가장 어려운 해결의 과정 없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것만 같다.
이런 영상들을 소비하고 창작하는 것을 무작정 반대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런 '하이라이트'에 길들여질수록 느껴지는 괴리에 대해 염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이라이트는 그림이나 사진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부분을 말한다. 당연히 하이라이트가 있기 위해서는 암부가 있어야 한다. 삶으로 대입시켜 보자면, 찰나의 빛나는 순간을 제외하고 우리 인생 대부분은 즐거움을 위해 인내하고 견디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당장 나조차도 영화를 완성하기 전의 과정들을 생략하고, 뚝딱 영화가 완성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시나리오를 몇 번이고 뒤엎고, 촬영 현장에서의 문제들과 부딪히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던 그 시간들은 지금 생각해도 괴롭고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몸에 각인되어 있지 않았다면, 헛발질하며 쓰던 이야기를 접고 다시 써낼 용기와 지난함을 버텨낼 수 있는 힘과 마음을 길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 돌아봤을 때 진짜 나의 모습은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찰나의 그 순간이나 관객에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지질함으로 무장하고 분투할 때의 모습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하이라이트로 축약할 수 없다. 모이면 힘을 발휘하는 그 일들은 조각으로 떼어놓고 봤을 때는 비루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안간힘에 불과해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압축한 요약본을 봤다고 해서 줄거리는 빠삭하게 알 수 있을지라도 그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삶은 지난한 여백이나 그림자같이 평범한 나날들 속에서 더 명확한 모습으로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니 빠르게 결말에 도달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보다 반대로 시간을 들여야만 알 수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을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내년부터 계속해서 미뤄 왔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을 다시 도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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