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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지 않게 챙겨 줄게요"…전세사기 '동시진행' 다시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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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잠깐 주춤했던 전세 사기의 핵심 고리인 '동시진행' 방식이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시 활개 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의 잇따른 전세 사기 근절 대책에도 정작 최근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빌라왕'처럼 고의로 전세 사기를 기획한 이를 거를 수 있는 제도가 여전히 미흡한 탓이다.
본보는 지난 7월 '파멸의 덫, 전세 사기' 시리즈 보도로 세입자 피해로 이어지는 '깡통전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세세히 파헤친 바 있다.
핵심 고리는 동시진행이다. 전셋값을 부풀려 매맷값과 똑같이 맞춘 뒤 세입자가 낸 보증금으로 신축 주택(빌라·오피스텔) 분양대금을 치르는 매매기법이다. 공시가 150% 제도·감정가격 부풀리기처럼 현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전셋값을 끌어올린 터라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다. 합법으로 무장한 '무자본 갭투자'다. 세입자를 들인 뒤 집주인 명의를 바지 집주인에게 넘기면 모든 단계가 종료된다.
사고는 2년 뒤 터진다. 동시진행은 거액의 수수료를 노리고 컨설팅 업체가 끼어드는 방식이라, 전셋값은 당연히 부풀려져 있다. 태생부터 깡통전세라는 얘기다. 바지 집주인은 명의를 넘겨받는 대가로 주어지는 300만~500만 원의 수수료와 2년 뒤 시세차익을 노리고 뛰어든 이들이라 애당초 전셋값을 돌려주는 일엔 관심이 없다. 전셋값이 오르면 오른 대로 이득이고, 떨어지면 집을 경매로 넘기고 빠지면 그만이다. 최근 논란이 된 빌라왕 김모(42)씨도 이런 방식으로 빌라 1,139채를 쓸어담았다. 업계에서 검증된 바지 집주인이 바로 그였다.
지난 7월 본보의 동시진행 실태를 고발한 시리즈 보도 이후 정부의 집중단속이 이어지면서 동시진행도 자취를 감춘 듯했다. 하지만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달부터 다시 동시진행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본보에 제보했다. 본보가 분양 직원과 중개업소 직원들만 이용하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에 직접 접속했더니, 최근 한 달 동안 올라온 동시진행 매물만 30여 곳(표 참조)에 달했다. 다만 요즘은 앱 대신 이른바 '꾼'들에게만 알음알음 홍보하는 경우도 많아 실제 서울·수도권 동시진행 단지는 100여 곳이 훌쩍 넘을 거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동시진행 매물을 살펴보니 전셋값과 매맷값을 똑같이 맞춘 완전 무갭 단지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전셋값과 매맷값 차이가 1,000만~2000만 원 정도 벌어진 단지가 대다수였다. 업계 관계자 A씨는 "전세입자를 안심시키려 일부러 눈속임용으로 약간의 갭을 둔 것일 뿐 나머지 단계는 모두 같다"고 설명했다.
이달부터 동시진행을 시작한 서울 강서구 공항동의 A빌라는 매매 가격이 3억8,000만 원인데 전세는 이보다 싼 3억6,000만 원이다. 이 단지에 걸린 리베이트(R로 표기)는 매매의 경우 8,000만 원, 전세는 6,000만 원이다. 실제 매매와 전세 가격이 같다는 얘기다. A빌라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전세로 들어가고 싶은데 가격이 부담된다'고 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중개수수료는 당연 무료고요. 전셋값은 신경 쓰지 마세요. 들어와 사신다고 하면 최대한 섭섭지 않은 수준으로 혜택을 줄게요."
'어떤 혜택이냐'고 묻자 "전화로 더 구체적으로 얘기할 순 없지만 전셋값을 최대한 덜 내게 해주겠다"고 답했다. 본인이 받을 6,000만 원 수수료 중 일부를 기자에게 주겠다는 뜻이다. 동시진행 단지는 세입자를 끌어들이려고 이처럼 본인이 받게 되는 수수료 일부를 '대출이자 지원', '이사비 지원' 등의 명목으로 쥐어준다.
같은 방식으로 세입자를 모집하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 B단지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 역시 여러 혜택을 내걸며 "전세금 떼일 일 없다"고 강조했다. 집주인이 직접 세를 놓는 물건이냐고 묻자, 중개인은 한참 머뭇거리다 "현재 이 빌라 투자자가 있는데 그분이 새 집주인이 된다"고 했다. 바지 집주인을 투자자로 둔갑시켜 얘기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전세 사기 근절 의지에도 이 같은 동시진행이 당장 사라지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분양 관계자 A씨는 "바지 집주인으로 명의가 이전되는 마지막 단계를 막는 게 관건인데 정작 현 제도는 이를 용인하고 있다"며 "당장 제도 개선이 어렵다면 거액의 포상금을 내걸어 단속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빌라왕' 김씨처럼 바지 집주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의 명의만 확보해 컨설팅 업체에 돈을 받고 넘기는 전문업체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국토부는 이날 전세사기 의심거래 106건을 경찰청에 수사 의뢰하는 등 전세사기에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 중에는 빌라왕 관련 사건 16건도 포함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바지 집주인을 일일이 확인하기 쉽지가 않다"며 "경찰과 진행 중인 전세사기 합동 단속 결과가 내년 1월쯤 나올 예정인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유형별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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