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사람들은 '경기가 안 좋다'는 말을 들으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갑을 닫는다. 그래서 소비가 줄고 각종 경제 지표도 줄줄이 떨어진다. 그만큼 사람들의 심리가 경제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경기가 어려울수록 정부나 기업인들이 주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사람들의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적절한 긴장감을 줘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TV에 들어가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화면을 만드는 LG디스플레이는 한때 사내 화장실에서 휴지를 모두 치운 적이 있다. 불경기에 마른 수건을 쥐어짜야 하는 긴축 경영의 필요성을 화장실 휴지를 메신저로 삼아 직원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당시 근무했던 직원들은 인력이나 복지 혜택을 줄이지 않고도, 위기 신호를 가장 크게 준 확실한 방법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정도로 심리적 타격이 컸다는 뜻이다.
요즘 신생기업(스타트업)들은 구글 메타 애플 트위터 등 전 세계 대형기업들이 줄줄이 인력을 줄이는 것을 보며 긴축 경영을 알리는 무언의 메시지를 고민하고 있다. 현금 유동성에 충분한 여유가 있는 기업들조차도 내년 경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에 생존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외 기업들처럼 무조건 직원들을 해고할 수 없고, 복지 혜택을 줄이면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들마저 떠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비용도 아끼며 직원들에게 위기 의식을 느껴 긴축 경영에 동참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모 스타트업 대표는 무제한 제공하던 직원들의 식비에 상한선을 두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상한선이 없다 보니, 먹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많이 주문하는 낭비를 막고 우리도 아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간식 종류를 줄이고 저렴한 것으로 바꿨다.
일부 스타트업들에서는 이중 식비가 사라지고 있다. 이중 식비란 월급으로 제공하는 식비 외에 별도 식비를 더 주는 것을 말한다. 직원들이 월급에 포함된 식비를 기본급으로 여기고 따로 식비를 요구하자 이직을 막기 위해 도입했다. 개발자 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를 원상 복귀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들이 기대했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 사이에 치사하게 먹는 것 갖고 장난친다는 반응부터 이 정도로 회사가 심각하냐는 과잉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직을 막으면서 비용을 아끼려다 거꾸로 이직을 부채질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스타트업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당장 투자가 얼어붙은 혹한기에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으로 경제를 해석했던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경제가 성장하려면 사람들의 심리를 바꿔야 한다고 봤다. 이를 위한 해법으로 케인스는 투자를 제시했다. 그에게 투자는 경제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투자를 해야 일자리가 늘면서 소득이 발생해 소비를 하고, 그것이 곧 기업과 국가 경제를 일으킨다는 시각이다. 심지어 시장에 돈이 과도하게 풀리며 발생하는 물가 상승, 즉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위축된 소비심리를 바꾸려면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거 경제론의 하나일 뿐인 케인스 이론이 금과옥조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바꿀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정부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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