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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이 아닌 냉전'에서 살아남기 [특별기고]

입력
2022.12.15 19:00
26면

미중 정상회담서 긴장 수위 조절한 바이든
김대중 전 대통령 '일맹삼호'로 미국 중시
윤 정부 '자유 규범 중시' 외교 평가할 만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 뉴시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 뉴시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최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최초로 무려 3시간에 걸친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다. 전 세계 언론이 회담 결과로 일제히 주목한 것은 바이든의 이 한마디였다. "나는 새로운 냉전이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미묘한 발언이다. 냉전으로 가지 않도록 중국의 협조를 촉구하는 한편, 역설적으로 강대국 간 관계가 냉전에 버금가는 긴장 속에 있음을 우려하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 긴장의 바탕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지해 온 '규범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와 이 질서를 바꾸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 이 둘 사이의 충돌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바이든이 "냉전이 있을 필요는 없다"고 하면서 애써 그 긴장의 수위를 낮추려고 노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냉전 종식 이후 30년간 이루어진 국제 정치와 경제의 변화 때문이다. 냉전 시기에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 그리고 시장 경제와 공산주의 경제로 확실히 나누졌던 동서 분리가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붕괴되고, 공산주의 국가들이 앞다투어 개혁·개방의 길을 걸어온 지난 30년간 세계의 경제 질서는 강도 높은 통합을 이루었다. 따라서 러시아, 중국이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의 강도를 높인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냉전 시기처럼 이들에 대한 '봉쇄'를 본격화하기가 어려워진 국제 관계의 구조적 변화가 그 첫 번째 원인이다.

둘째, 전 세계 경제가 지난 몇십 년 만의 최악이라고 불리는 고물가, 저성장에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식량은 물론이고 중요한 원료, 부품 공급망이 교란되고, 화폐 부문에서는 미국이 유동성 회수에 나서면서 이자율과 달러 환율이 고공 행진을 함에 따라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G2 양국 정상은 시장에 안정적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최근에 만난 미국 고위 인사 한 명은 바이든이 이러한 점을 상당히 고려하였음을 시사하였다. "냉전이 있을 필요는 없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따라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경험해 온 쉽지 않았던 한 해를 함축적으로 요약한 발언이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우리나라의 외교·안보 정책은 올바른 방향타를 유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 '규범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 유지임을 분명히 밝혀왔다. 우리나라의 안보, 산업화, 민주화가 이러한 국제 질서에 크게 힘입은 것이므로, 이 질서가 심각한 도전에 처한 상황에서 그 유지에 일조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정책 표명은 적절했다.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중요성을 새롭게 절감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나토 회원국들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를 새로이 인식하고, 이에 따라 나토의 결속력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대하여 우리 외교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 유지, 특히 한미 동맹에 편향되는 것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긴장에 빠뜨리게 한다는 우려 섞인 시각이 있다.

우리나라의 지정학, 지경학적 여건을 고려할 때 미·중뿐 아니라 일본, 러시아를 비롯한 4강과의 우호 관계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미 안보 동맹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외교를 오래 연구해 온 학자가 김 전 대통령의 외교 기조를 '일맹삼호'라고 정리하는 것을 들었다. 한국 외교는 동맹(미국) 1개국, 우호국가(중·러·일) 3개국 구도라는 뜻이다. 1998년에도 이것이 우리 외교의 기조였다면, '냉전이 아닌 냉전'에 살아남아야 하는 현재는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성찰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호영 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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