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힘

입력
2022.12.15 04:30
수정
2022.12.15 10:33
26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의 모습. 연합뉴스

간혹 삼재(三災)를 의식할 때가 있다. 9년 주기로 3년 동안 악재를 겪게 되니 그 기간 몸을 조심해야 한다는 게 요지인데, 검찰 출입 기자 입장에선 5년 주기 정권 교체기 1년간이 더 괴롭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으레 사정 바람이 불곤 한다. 여(與)에서 야(野)로 혹은 야에서 여로 정권이 바뀔 경우엔 바람의 강도는 예상을 뛰어넘기 일쑤다. 물론 바람이 찬지 따뜻한지 신경 쓸 여력은 없다. 삼재는 부적으로 피할 수 있다지만, ‘루틴’처럼 찾아오는 사정의 회오리는 피할 방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사정 바람의 최선봉에 서 있는 건 역시나 검찰이다. 감사원이나 경찰 같은 기관도 있지만 이들은 그저 도울 뿐이다. 수사 전문가 집단이자 기소독점 기관인 검찰의 움직임이 사정 바람의 전부라 해도 빈말은 아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았으니, 헌 부대는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다는 집요함마저 가끔은 느껴질 정도다.

일선 검사들은 대부분 손사래를 친다. 외견상 그럴 뿐, ‘죄 있는 사람’을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뿐이라고 한다. 사납게 반박하는 검사들도 있다. 이들은 특정인과 특정 집단을 향한 선별적 수사라는 비판과 전 정권에 대한 보복 수사라는 말 자체가 정치적 공세라며 화를 낸다. 좀 더 과격한 이들은 “역시 (넌) 검찰 편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획 돌리기까지 한다.

그럴 땐 올겨울 어김없이 불고 있는 사정 바람 얘기를 꺼내곤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가 1년 넘게 멈추질 않는데, 왜 그러냐고 묻는다.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 등 전 정권 청와대ㆍ안보라인 인사들을 겨냥한 수사 얘기도 “이게 이 정도로 할 만한 일이냐”고 질문할 때도 있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관련 수사, 전 정부의 각 부처 장관들이 연루된 다수의 블랙리스트 수사.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든 전 정권과 현 야권을 겨냥한 검찰 수사를 거론하면서 5년 전, 10년 전, 15년 전과 뭐가 다른 건지 얘기해 달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사실 검찰 취재 경험이 쌓일수록 체험하는 건 ‘검찰의 힘’이다. 과거 여론의 비판을 받았던 여러 사건들 뒷얘기를 들을수록, 검찰 수사에는 ‘법과 원칙’ 이외의 힘이 작용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무엇을 수사해야 할지 선택하고, 사건의 수사 강도를 자의적으로 조절하고, 적당한 법적 정치적 논리에 맞춰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 무엇보다 그 과정에 특별한 외부 견제를 받지 않는다는 검찰의 힘 말이다.

목적과 의도, 방식은 각각 달랐지만, 과거 모든 정부가 검찰 힘 빼기에 나섰던 건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언제나 그들 힘의 핵심을 지켜내 왔다. 10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는 없다지만, 어쩌면 나무가 아닌 곳에 도끼를 찍어 왔던 건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다.

5년 후, 검찰이 주도하는 사정 바람은 아마도 다시 불 것이다. 지금 안 보이는 어느 곳에서 검찰의 힘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이들도 그때가 되면 그 바람의 차가움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올겨울, 유난히 춥다.

남상욱 사회부 차장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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