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고객이 찾는 좋은 서점과 책

입력
2022.12.14 21:00
25면

카렐 차페크 지음, '정원가의 열두 달'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책방에는 다양한 손님이 찾아온다. 책방을 시작하며 분명한 콘셉트를 정해 특정 주제를 담은 책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겠다고 했지만 책방을 찾아오는 이들이 다양한 만큼 관심사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책방은 주제로 정한 '자연' '건강' '음식'에 관한 책을 꾸준하게 소개해 왔다. 자연스럽게 책방이 지향하는 주제는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졌고 명확하게 정한 책방의 콘셉트가 종종 생각지도 않은 연결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책방 손님 중에는 정원을 직접 가꾸며 정원 관련 책에 진심인 분이 계신다. 그 손님 덕분에 책방 앞에 작은 화단이 생겼고, 계절마다 다른 꽃과 식물들이 책방 앞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그분 소개로 정원 관련 분야에서 잘 몰랐던 책을 알게 된 경우도 종종 있다. 우분투북스 책방지기의 정원 관련 책장은 그 손님과 함께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소개할 책도 그분 덕분에 알게 된 정원 관련 고전 중 한 권이다.

책방을 개업한 이래 정원 관련 책의 고전으로 꼭 챙겨놓은 책은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였다. 어느 날 정원가 손님이 정원 관련 책 중에 헤세의 책보다 훨씬 재미있고 정원을 가꿔보지 않은 사람이 읽어도 공감할 만한 책이 있다며 체코 출신 작가의 책을 한 권 추천해 주셨다. 그런데 아쉽게도 책이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이런 책은 반드시 재출간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1년 남짓 작가의 이름과 정원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어느 날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출판사를 확인해 보니 1인 출판사다. 출판사를 수소문해 10권을 주문하고 책을 추천해 주신 손님에게도 알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책이 도착했고 이어 그 책을 찾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정원가 손님이 지인들에게 책을 소개해 준 덕분이다. 그렇게 우연히 알게 된 책이 어느새 우분투북스의 정원 책장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 일을 계기로 책방 손님과 출판사 대표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낸 작은 연결을 경험한 순간이다.

소중한 경험을 안겨준 책은 '정원가의 열두 달'이며, 체코의 국민작가 카렐 차페크의 에세이다. 헤세의 정원 이야기가 차분하고 정적이라면 차페크의 정원 이야기는 역동적이고 유쾌하다. 책은 작가가 정원을 가꾸며 겪은 1년간의 기록을 시간의 흐름 순으로 담았다. 마치 그의 정원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읽히며 공감 가는 대목도 많다. 책에 곁들여진 삽화는 작가의 형이 그린 것으로 위트가 넘치며 차페크의 글과 잘 어울려 읽는 재미에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듯하지만 계절에 따라 다른 열두 달 정원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연의 순환 앞에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게 된다. 또 해와 바람, 비 그리고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흙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새삼 알게 되고, 자연에는 인간이 노력과 능력 밖의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실감하게 된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손님 덕분에 작은 화단을 가꾸며 계절의 변화와 식물에 세밀한 관심이 생겼기 때문에 더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막연한 관찰자 입장에서 직접 작은 식물을 키워보니 '마음을 바쳐서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듯, 가드닝 역시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열정 그 자체'라며 정원이 목가적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카렐 차페크가 던진 일침에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좋은 서점의 핵심 조건은 바로 좋은 고객이다. 좋은 서점에는 좋은 고객이 찾아오고, 좋은 고객에게 판매할 좋은 책이 준비된다.' '나는 매일 서점에 간다'라는 책의 작가 시마 고이치로의 말처럼 좋은 손님 한 분이 책방과 책장을 풍성하게 했던 경험을 마음에 새긴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막연하게 좋은 책이 아니라 책방을 찾는 손님의 취향과 관심사에 맞춘 좋은 책을 고르려 책장을 들여다본다.

우분투북스

  • 이용주 대표

우분투북스는 대전시 유성구 어은동에 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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