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삶에도 색깔이 있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오랜 시간 '약국 안 책방'에 상주하지만 나와 바특한 곳을 벗어나고 싶은 때가 종종 있다. 라디오에서 항상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문에 달린 종소리가 들리는 이 공간은 귀에 익숙하지만 10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틈이 있기 때문이다.
이 틈이 약간씩 벌어져서 찬바람이 솔솔 불어들어 올 때면 근처 카페나 스터디 카페를 간다. 둘은 정말 성격이 다른 공간인데, 카페는 각종 소리와 대화가 사방에서 들리는 곳이고 스터디 카페는 책장 넘기는 소리와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 그리고 가끔 코 고는 소리만 들리는 곳으로 둘 사이엔 극명한 소리의 대조가 있다. 내가 이런 반대되는 성격의 공간을 차별 없이 방문하는 이유는 뭘까?
어느 날 한 카페에서 누가 보기에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동네 친구들(동네 엄마들)을 만나는 여성들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한껏 들뜬 기운을 뿜어냈다. 이 대화는 얼핏 들으면 시끄럽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의 데시벨이어서 의도치 않게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그때 본 그들의 표정은 내가 과거에 마주했던 어떤 몽실몽실한 장면을 어렴풋이 떠오르게 했다. 그게 언제였더라? 그건 바로 고등학교 시절에 이상하게 생긴 파르페라는 것을 먹어보겠다고 들른 카페에서 훔쳐봤던 여고생들의 표정이었다! 진정 기뻐하고 재밌어하는 '여고생의 밝은 표정'.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하게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 주변에서 내게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정확한 언어적 등가물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보르헤스와 나', p.199)
아마 제이 파리니가 보르헤스를 우연히 만나 함께 여행을 하며 느꼈던 감정을 나도 느낀 것 같다. 제이 파리니는 알지도 못하던 '거장'인 보르헤스를 우연히 '떠안게' 되면서 모르는 사람과 불편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에게 보르헤스의 첫인상은 거장이고 뭐고 모르겠고, 단지 눈이 안 보이는 수다쟁이 노인네였다. 오죽했으면 "말수가 적은 보르헤스는 보르헤스가 아니다"라고 했을까? 하지만 그는 보르헤스와 생활하면서 무채색의 삶에 색깔을 입히게 된다. 감정이라는 것이 다채롭게 변하고 마주하는 모든 것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보르헤스는 당시에 시력을 완전히 상실해 어떤 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파리니는 늘 만나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 보르헤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했으니 세상과 삶을 보는 눈조차 달라졌던 것이다.
그랬다. 나는 삶의 다양한 색깔을 보고 싶었던 거다. 무채색도 있지만 그보다 더 다양한 색깔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던 거다.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하는 어떤 지점도 있다. 나이 든 사람의 미소만 봐도 옛날 나를 보며 웃던 할머니가 떠오르고, 깔깔거리며 웃는 아기 엄마들을 보면 훔쳐만 보던 여고생들이 떠오르며,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세 살배기를 보면 우리 아이의 그 시절이 생각나는 거다. 스터디 카페에서 피곤에 절어 엎드려 있는 사람을 보면 급하게 벼락치기하던 내가 연상되기도 한다.
현재 내 삶이 무채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모여 사는 이 세상에는 다양한 색의 삶이 있다. 서로 다른 색의 물감들이 만나서 또 다른 재밌는 색을 만들어내듯 그 색깔들을 가까이서 느껴보는 것이 예상치 못한 매력적인 색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우리 각자의 삶에는 그런 힘이 있으니까.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