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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

입력
2022.12.15 00:00
27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에서 바라본 국회 본청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에서 바라본 국회 본청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가져왔던 우리나라에 대한 큰 자랑 중 하나는 종교의 공존이었다. 종교의 공존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내전국들에는 거의 예외 없이 이슬람과 기독교가 부딪히는 북위 10도 선이 지나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 30년 전쟁, 위그노 전쟁 등 종교 간 파괴적 충돌은 국경 내외를 막론하고 너무나도 많았다.

미국 CIA가 정리한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는 24%, 로마 가톨릭은 7.6%, 불교는 24.2%, 무교는 43.3%로 종교 면에서 매우 독특한 분할을 보인다. 이런 분할 속에서 종교에 의한 큰 다툼 없이 살아왔다. 그 원인에 대해서 대략 세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본다.

하나는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유학이라는 합리성의 전통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종교의 근저에 깔린 기복신앙이라는 공통점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포용성이 유교적 합리성에 근거한 건지, 아니면 모든 종교가 기복신앙이 되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겠다. 이유가 어떻든 종교 갈등이 약하다는 것 그 자체는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종교의 신께 감사 기도를 드릴 만한 일이다.

마지막 가설은 종교 역할을 정치와 이념이 대신하고 있다는 거다. 물론 정치와 이념의 종교화는 자랑할 일이 아니다. 복잡한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념 때문에 내전을 치렀다. 이런 아픈 경험은 전쟁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정치의 종교화가 전쟁 이후 지도자 무오류설로 이어지는 듯한 모습이다. 어찌 보면 이념의 종교화보다도 차원이 낮다고도 볼 수 있다. 몇몇 정치인에 대한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는 정치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종교적 심성의 결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보스 정치는 사이비 종교에서 보이는 맹신을 닮아있다. 우리 사회에서 몇몇 전임 대통령과 현 대통령 등은 지지자들에게 정치 지도자가 아닌 종교 교주나 종교 창시자처럼 되어 버렸다. 모두 그야말로 '공과 과'가 두루 있는 인물일 뿐인데 말이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지도, 내전을 겪은 지도 한참, 독재와의 투쟁도 한참이 지났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정치가 되고, 종교는 종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치는 원래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정치라는 게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화합하면서 답이 없는 문제들에 대해 서로 입장을 조정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는 최소한의 존중을 해 주지 않는다면 정치는 사활을 건 전투가 되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가지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갈등 없는 사회와 싸움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갈등 조정 과정에서 여유 있고 우아하게 싸우는 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며 우아하게 싸우는 게 정치다.

다소 엉뚱한 상상일지도 모르나 정치가 종교화한 건 종교가 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종교에서 본받고 싶은 큰 스승을 찾기 어려우니, 교회당과 절에서 가르쳐주는 하나님과 부처님의 말씀이 공허하니, 정치 쪽 인물들을 신격화하는 건 아닐까? 이런 허전함을 극복하고 정치와 종교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무엇보다 정치와 종교 모두 도덕과 정의를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하겠다. 갈등을 조정하는 데 한몫해야 할 정치와 종교가 갈등의 근원이 되고 있는 이 즈음 한 해를 보내며 간절한 바람을 가져 본다. 정치와 종교가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정치는 정치가 되고 종교는 종교가 되기를.


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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