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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1명 밖에 없어”…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입원 중단’

입력
2022.12.12 15:43
수정
2022.12.1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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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병원 내년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 0명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홈페이지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홈페이지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이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중단했다.

그동안 수도권에서 일부 병원이 16세 이하 소아·청소년 등의 응급실 야간 진료를 멈춘 적은 있지만 입원 환자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동우 길병원 소아청소년과장은 “이달 초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잠정 중단한다”며 “내년 3월쯤 전문의가 충원되면 입원 환자 진료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다만 외래 진료와 소아응급실은 그대로 운영된다.

길병원은 최근 몇 년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입원 환자를 진료할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내년 상반기 전공의 1년 차 모집 과정에서 길병원 소아청소년과(정원 4명) 지원자는 단 1명도 없었다.

길병원 관계자는 “소아청소년과 4년 차 전공의들이 전문의 시험 준비에 들어가면 2년 차 전공의 1명만 남아 입원 환자를 진료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외래에서 가능한 일반 검사와 내시경ㆍ심장 초음파 등 특수 검사는 더 세밀히 진행하겠다”며 “입원이 필요한 어린이 환자는 다른 병원에 의뢰해 달라”고 했다.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란 눈앞

소아청소년 전공의(레지던트) 미달 사태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지난달 모집한 내년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에서 정원 199명에 33명(16.6%)만이 지원했고, 11개 병원에서만 전공의를 확보했다.

이전부터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지원율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었다. 2019년 80%에서 2020년 74%, 2021년 30.8%, 올해에는 23.5%였다.

'빅5 병원'에서는 서울아산병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달 사태를 빚었다.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각각 10명, 3명이 지원하는 데 그쳤다. 세브란스병원은 11명 정원에 지원자가 0명, 가톨릭중앙의료원은 13명 정원에 1명만이 지원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지난 9일 성명을 내고 “전 국민의 17%의 진료를 담당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 인력 부족으로 사회안전망이 위협받고 있다”며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란을 방지하고 진료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관계 기관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이미 지난 10월부터 밤 10시 이후엔 16세 미만 소아청소년 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가 없어 교수까지 당직을 섰지만 밤에 당직을 선 뒤 낮에 외래 환자를 보는 시스템을 도저히 운영할 수 없었다”고 했다.

조안나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방 국립대병원에서 일하는 동료 교수들은 인력 충원이 되지 않아 밤마다 당직을 서고 다음날 외래 진료를 보며 버틴 지 벌써 2~3년이 돼 간다"며 "이런 상태로 1~2년 더 버틴다고 해도 어떻게 10~ 20년을 버틸 수 있겠느냐"고 했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내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단 1명도 없는 병원은 32%, 2024년에는 60%에 이를 것”이라며 “소아청소년과 탈출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란'만 남았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상황이 이지경인데 보건복지부는 저출산이 지속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남아돌 것이라는 등 이상한 소리만 하고 있다"며 "정부가 발표할 필수의료대책에도 소아청소년과에 실효적인 대책은 하나도 없다. 당장 2~3차 병원 소아응급실 인력이 없어 정상적인 진료가 진행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지금 전국 수련병원 가운데 교수가 당직을 서는 병원이 75%”라며 “진료, 교육, 연구를 하는 교수들이 당직까지 서게 되자 교수직을 그만두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도 10년 전 초저출산으로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을 겪었지만 정부가 보상 체계를 마련했다”며 “이후 의사들이 안정적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40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인구가 줄어 소아청소년과 장래가 없다는 얘기는 10년 전부터 있었지만 지금처럼 지원이 크게 감소한 것은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당시 사고 책임을 물어 의사들이 구속되고 법적 공방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의대생들이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게 됐다는 것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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