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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라이브는 '병풍'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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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그냥 듣는 음악이 아니에요. 얼마나 치열한 대결인지 직접 봐야 해요. 저 친구들 보세요. 방금 곡을 가로채서 멋대로 가지고 놀아요. 다들 새로 작곡하고 편곡하고 쓰면서 선율까지 들려주죠. 매번 새로워요. 매일 밤이 초연이에요."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에서 남자 주인공 세바스찬은 "재즈가 싫다"는 배우 지망생 미아에게 이렇게 재즈 예찬론을 늘어놓는다.
세바스찬의 말처럼 재즈는 그냥 듣는 음악이 아니다. 연주에 집중해야만 들리는 음악이다. 연주자들끼리 어떤 치열한 대화를 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솔로'라고 부르는 즉흥 연주는 재즈의 핵심이다. 코드 진행 외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음악적 이야기를 순간적으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연주하는 순간이 창조의 순간이자 완성의 순간이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할 때마다 다르다. "매일 밤이 초연"이다.
재즈 연주자들은 그 즉흥의 순간을 맞기 위해 오랜 시간과 열정을 바쳐 유창한 자신만의 언어를 갖춘다. 멋진 솔로가 터져나오면, 좋은 관객들이 즉각 알아채고 환호를 보낸다. 그 환호에 고무돼 연주자의 솔로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이처럼 무대와 객석은 즉흥의 완성을 위해 점층적으로 대화하는 관계다.
재즈 클럽은 예상할 수 없는 음악적 사건이 매일 일어나는 장소다. 클럽 운영자는 뮤지션과 관객이 그 사건을 어떤 방해 없이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 사건을 통해 재즈 뮤지션들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순수하게 대면하고, 관객은 삶의 자유로운 순간을 만끽한다. 뮤지션들이 겨우 차비밖에 되지 않는 출연료를 받고도 기꺼이 클럽에 출연하는 이유다. 무대 자체가 보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내가 아는 음악 관계자들끼리 다이닝 재즈 클럽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다. 다이닝 재즈 클럽은 재즈 라이브보다 식사가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분위기 있는 식사를 하고 SNS에 올릴 사진 거리를 재즈 라이브가 적당하게 제공하기 때문에,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관객들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연주에 집중할 수 있다면, 이 문화가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이닝 재즈 클럽은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밥 먹고 대화하느라 정작 재즈 라이브는 뒷전이다. 근사한 한 끼 식사를 위해 재즈 뮤지션들이 살아 있는 '병풍'이 되는 셈이다. 무대가 희생되는 이런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적잖이 괴롭다.
이런 클럽은 결국 무대와 객석의 상호 소외를 부른다. 무대는 객석으로부터 고립되고, 뮤지션들은 객석을 없는 것으로 치고 연주한다. 대화가 단절된 채 벌어지는 무대의 일방적 쇼를 흔히 행사라고 부른다. 재즈 클럽 공연이 값싼 행사처럼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실제로 많은 연주자들이 다이닝 재즈 클럽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재즈 클럽이 호황을 누리고 재즈 인구를 유입한다 한들, 이는 결국 재즈의 본질을 희생시켜 얻는 것들이다. 본질을 잃은 후에, 우리 삶은 어떤 대차대조표를 쓸 수 있을 것인가. 재즈가 배경음악이 되어야 한다면 민망하게 라이브를 할 게 아니라 그냥 음악을 틀면 된다. 뮤지션들을 무안하게 만드는 건 무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오늘 밤 어디서든 무대가 소외되지 않는 재즈 라이브를 만나보라. 재즈를 잘 모르더라도 연주자의 열정이 지루한 당신 삶의 시간을 화들짝 깨어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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