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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에 맞서는 제도개혁 '정년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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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단위로 화요일 연재합니다.
<46> 찬반양론의 정년연장 ‘한국식 특화모델로 돌파’
덜 낳고 더 늙는 인구구조의 물구나무는 지속불능과 기반붕괴를 뜻한다. 고민과 대응은 필수다. 현 단계에서 임박한 제도개혁 중 하나는 정년연장이다. 정년을 환갑 이후까지 더 늘려 초고령화에 맞서는 차원이다. 재정건실·노후준비·숙련활용 등이 제도개혁의 기대 효과다. 반면 청년박탈·대상제한·소득감소 등 갈등 이슈도 적잖다. 벌써부터 찬반 양론은 뜨겁다. 총평하면 이해조정 속 개혁착수가 예상된다. 많은 선행국가도 정년연장에 나섰다. 중요한 건 한국적 특수성을 반영한 연착륙용 갈등조정·공감확보에 있다. 개혁효과가 잘 발휘되도록 다양한 설득기제·보완장치를 고민할 때다.
정년연장의 기대효과·실효성은 존재한다. 1년의 정년연장이 6년 후 국내총생산(GDP)을 1% 늘린다는 영국의 실증연구도 유명하다. 고용효과·소득창출·연금재정 등 주로 경제적 부가가치에 주목한 선행연구다. ‘고령화=저성장’을 떠올리면 납득된다. 고령인구가 1% 늘면 GDP가 0.041% 준다는 연구도 있다(국제통화기금ㆍIMF). ‘일하는 노인’의 기대효과다. 정년연장으로 신체·정신적 활력이 유지되면 부양부담을 덜고 복지·조세 차원의 선순환적 세대부조가 실현된다. 가령 ‘저축유지→자본공급→성장토대’부터 ‘고령근로→복지감소→재정확충’이 그렇다. 그래서 정년연장은 다목적함수로 통한다. 정부는 재정적자(복지비용)를 줄이고, 근로자는 노후안전망이 촘촘해지며, 기업은 숙련자질을 쓰기에 좋다. 무엇보다 급격해진 인구변화를 볼 때 정부 차원의 채택압박이 구체적이다. 시대변화에 필요한 제도개혁의 첫걸음인 까닭이다. 실제 복잡다단한 연금·조세·근로개혁을 위한 기반과제가 정년연장이다. 인구보너스 때 설계된 연금제도를 지속하자면 ‘저부담·고급여→고부담·저급여’는 필수인데, 이는 정년연장이 전제될 때 설득적이다. 60세 정년·65세 수급의 보릿고개를 넘자면 근로소득이라도 보장할 수밖에 없다.
정년연장은 예고됐다. 초고령화에 따른 부양부담 때문이다. ‘생산인구→은퇴인구’로의 대량전환을 막을 정년연장은 절실해진다. 보험료(현역인구)는 주는데, 수급비(고령인구)가 늘면 유지불능이다. 더 내고 덜 받자면 더 오래 일하도록 바꿔줄 수밖에 없다. 2017년 60세 정년적용 후 불과 5년 만에 재차 핫이슈가 될 만큼 인구변화는 위협적이다. 갈등은 줄이고 효과를 높이는 재설계가 관건이다. 한국보다 빨리 늙은 해외 국가도 정년연장을 채택했다. 일본은 65세 정년을 2021년부터 70세까지 늘렸다. 강제의무가 아닌 노력의무지만, 사실상 세계 최초로 명문화된 70세 정년실험에 착수한 것이다. 29%의 초고령사회(2021년)답다. 스페인(2027년)·독일(2029년)도 65세에서 67세로 점진적 정년연장을 택했다. 프랑스는 ‘62세→65세’로의 연장이 2022년 갈등적 대선의제가 되며 찬반분열을 낳았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뜨거운 감자다. 미국·영국 등은 연령차별로 봐 정년 자체가 없다.
정년연장은 제도개혁의 출발이나 반대 논리도 귀담아듣는 게 좋다. 틈새·부작용을 다룬 연구도 증가세다. 정년연장·청년실업의 연계성이 대표적이다. 지배적 통설은 세대 간 보완관계로 정년연장이 청년실업과 직결되지 않는다고 보지만, 현실은 그렇잖다는 쪽이다. 노동총량설에 따르면 정년연장·청년실업은 대체관계로 본다. 즉 ‘정년연장→청년실업’으로 이해한다(이찬영·2011). 좋은 일자리일수록 그렇다. 정년연장으로 고령의 양질 고용이 지속되면 매년 1만~1만2,000개의 청년취업이 잠식된다(김대일·2021). 청년세대의 미래 임금을 희생시켜 고령세대를 돕는다는 이론적 반발 근거다. ‘정규직 vs. 비정규직’의 격차 확대와 주 52시간 근무제, 높아진 최저임금 등의 상황 변화가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치열한 세대 쟁탈로 비화된 결과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면 정년연장발 세대 경합이 거세진다는 의미다. 실제 정년연장의 대상은 극소수 일자리에 한정된다. 공무원·대기업 등 ±10%의 근로자로 대부분의 직장인·자영업자는 정책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청년희망의 양질고용과 고령근로의 정년연장이 일치한다는 점이다. 안정적 고용기회가 고령인구에 집중·계속되는 계층효과가 발휘되면 청년세대의 박탈감은 세진다. 정년연장에도 임금피크로 실질소득이 줄면 현장 반발도 예상된다. 대상조차 아닌 비정규직 등은 종신고용·연공서열이 전제된 정년연장 운운 자체가 싫다.
일본 사례를 뜯어보면 정년연장은 득실 차이가 분명하다. 기업·직원은 반신반의, 정책·재정은 환영 자세다. 연금곳간 등 재정건전성에는 좋지만, 당사자인 기업·직원은 신중하다. 먼저 오래 일하지 않겠다는 고령직원의 반발·거부가 증가세다. 정년연장의 근본 취지에 맞선다. ‘정년연장=임금피크’의 모순·함정이 확인되며 그 전에 그만두는 기현상까지 있다. 연장 전후 통상 50~70%로 줄어드는 월급 감소 탓이다. ‘65세 정년제의 함정’은 신분변화(정규직→비정규직)의 강등과 함께 촉탁계약의 5년 시한부를 얻은 게 전부라며 비꼰다. 일만 오래할 뿐 손에 쥔 생애소득이 별로라면 경제적 인센티브는 줄어든다. ‘고령자=고임금’을 볼 때 기업 부담도 만만찮다. 이윤조건에 맞춰 고용구조를 최적화하는 기업으로선 냉정한 대응체계를 모색한다. 임금을 덜 주는 가격조정과 해고·퇴직을 통한 양적 조정이다. 가격 조정은 최근의 위헌 결정(업무변화 없는 임금피크)처럼 쉽잖기에 명예퇴직 등 정년연장의 대상 축소를 위한 사전단계의 양적 조정이 유행할 수밖에 없다. 노동착취형 블랙기업이 아니라도 강제퇴직에 가까운 조직적 무시·냉대로 퇴사토록 강요하는 일본 사례가 화제일 정도다. 인건비·직원 수가 정해졌거나 경직적일수록 정년연장만큼 신입채용을 못 하는 회사도 부지기수다. 상당수 일본 기업은 △정년상향 △계속고용(근무연장·재고용) △정년폐지 등 3대 선택지 중 계속고용(70%)을 선호한다. 1년 단위 촉탁식 재고용인데 위탁계약으로 인건비를 줄인다.
기존 연구·해외 사례를 봐도 정년연장은 쉽잖은 개혁이슈다. 때문에 대세론을 앞세운 무리한 정책화는 신중한 편이 좋다. 총론·각론을 나눠 부담 최소·효과 최대를 위한 점진·단계적 개혁 진행이 관건이다. 더욱이 65세 정년연장이 끝일 수 없다는 현실한계도 고려 대상이다. 인구구조를 보건대 70세 이상으로 추가적 연장이슈는 확정적이다. 언젠가 닥칠 일이면 지금부터 하나하나 준비·대응하자는 차원에서다. 선진 사례를 봐도 연금수급·실제정년을 맞추는 데만 수십 년을 썼다. 정년연장에 한정하면 진행방식은 ‘재고용→정년연장→정년폐지’가 유력하다. 근로능력·취업의사만 있다면 연령제한의 차별대우는 혁파 대상이다. 동시에 임금피크를 둘러싼 기존질서의 충돌사례(위헌판결)처럼 차제에 총체·구조적 제도정합성을 향상시킬 기회로 삼는 게 권유된다. 고성장 때 만들어 지금껏 유지되는 고용·임금·승진·평가시스템 전반을 개혁하자는 얘기다. 시대변화에 맞게 근로형태를 재구성해야 지속성은 보장된다. 길게는 성별·연령 격차는 물론 정규직·비정규직의 고용형태별 차별철폐가 추구 가치다.
정년연장의 승패는 기업에 달렸다. 재정절감·세수확보·사회활력 등 얻는 게 많은 정부야 밀어붙여도 정작 이해당사자인 기업·직원이 안 움직이면 무용지물이다. 비용 부담을 내세운 부정·신중론도 면밀히 분해·배려하는 눈높이가 필수다. 고용권한을 쥔 기업 부담이 적도록 연착륙을 위한 정책지원·자금보조도 성공 열쇠다. 당장은 임금피크 등 임금체계가 관건이나, 다양·유연한 근무방식이 실현될 때 평생 현역의 기반 정비도 구축된다. 주지하듯 제도와 현장이 벌어지면 곤란하다. 60세 정년임에도 50세 무렵 퇴직하는 현실이면 개혁 성과는 반감된다. 더불어 수용·이식 후 거부반응이 우려되는 해외모델의 과도한 기대보다 한국사회의 특수·경로성을 담아낸 접근방식이 바람직하다. 정년연장의 한국모델을 만들어 정합·효과성을 극대화하는 식이다. 정년연장과 청년채용을 연결시킨 통합체계가 후보다. 임금수준·적용기간 등을 세분화해 연장 부담을 줄이되 그만큼 청년채용의 활용재원으로 쓰는 형태다. 고용연장 효과와 청년실업 잠식이라는 딜레마를 고용시장의 수요확대로 풀자는 얘기다. 규제완화·혁신고용·균형임금 등 달라진 제도운영이 넛지로 제격이다. 필요만으로 설득할 수 없다. 수용되도록 제반 여건을 충족·강화해주는 게 정부 역할이다. 정책은 대책으로 맞는다는 비유가 통하지 않도록 무르익은 정년연장 논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는 심미안이 요구된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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