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한전에서 떼어내야 할 송·배전사업

입력
2022.12.13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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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한국전력 적자와 관련된 뉴스가 거의 매일 경제면 상단을 장식하고 있다. 원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해온 덕분에 올해 말까지 30조 원에 이르는 적자가 쌓일 것으로 예상되고,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수십 조원 규모의 한전채를 발행하다 보니 우리나라 채권시장 전체가 요동을 치고 있다.

정부는 한전이 전력을 구매하는 전력 도매가격을 통제하는 SMP 상한제라는 극약처방까지 꺼내들었다. 그러나 올해 3분기까지 한전의 적자가 21조8,000억 원인 데 비해 7대 민간발전회사들의 영업이익의 합이 1조8,000억 원임을 고려하면, 발전회사들의 폭리가 한전 적자의 주범은 아니며 도매가격 억제는 한전 적자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도매가격까지 왜곡해 한전의 적자를 발전회사들에 떠넘김으로써 발전회사들까지 동반 부실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국 한전의 적자행진을 막으려면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하는 수밖에 없는데, 전기요금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정부가 과연 그럴 배포가 있는지 걱정이다.

그런데 이처럼 한전의 적자 문제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바람에 정작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미래를 위해 정말 중요한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바로 송·배전망과 계통 운영 인프라에 대한 투자이다.

현재 8% 내외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송·배전 계통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전원은 기상에 따라 간헐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최대 전력수요보다 훨씬 많은 발전용량을 전국에 분산 배치해야 하고 그만큼 송·배전망 건설비용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송·배전 시설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낮아져 송·배전망 건설 기간과 비용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했다. 재생에너지 전원의 들쭉날쭉한 발전량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전기를 대규모로 저장하거나 신속히 발전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소위 유연성 자원들도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데, 이 역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꾸준히 투자를 늘려나가야 하는 문제이다. 이런 투자들이 선제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향후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데 병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에 육박하는 제주도에서 유연성 자원의 부족으로 풍력, 태양광 발전소들이 수시로 발전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이미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 계산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5년 동안에 송·배전망에 대해 33조 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 물론 그 이후에도 유사한 수준의 투자가 계속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투자를 담당하는 한전의 곳간이 텅 비었고,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올 여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년 적자를 반복하면서 재무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상장기업에 대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마냥 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국가 핵심 인프라인 송·배전망은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운영돼야 하고 모든 이용자들에게 공평한 조건으로 개방돼야 한다. 이런 사업을 연료비 등락과 경직적 요금이라는 리스크에 항시 노출돼 있는 전력 판매사업자에게 맡기기보다는 따로 분리시켜 국가 관리하에 두면서 미래의 에너지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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