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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대탈출과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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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쿠바에서 미국행 엑소더스(대탈출)가 벌어지고 있다. 항공편으로 쿠바인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중미 니카라과에 도착한 뒤 3,000㎞ 육로를 거쳐 미국에 밀입국하는 것이 주요 루트다. 항공료와 밀입국 조직에 건넬 돈은 세간을 처분하거나 먼저 이민한 친지에게 빌려 마련한다. 그럴 형편이 안 되면 얼기설기 모터보트를 만들어 목숨을 건 항해에 나선다. 나무, 스티로폼으로 만든 몸체에 자동차나 발전기에서 떼어낸 모터를 단다. 임시방편으로 잔디깎기 모터도 쓴다. 아무리 짧아도 150㎞를 건너야 플로리다에 당도할 수 있다. 미국 해안경비대에 들켜 송환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 이렇게 조국을 등진 쿠바인이 최근 1년간 25만 명이다. 총인구(1,100만 명)의 2%가 넘는데 대부분 젊은 층이다.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된 1959년 이래 이 나라에선 정치·경제적 이유로 여러 차례 엑소더스가 일어났지만 이번 유출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다. 1차적 요인은 경제난이다.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정책으로 최대 산업인 관광업이 타격을 입자 가뜩이나 부진한 경제 상황이 한층 악화됐다. 식량·연료 부족, 잦은 정전 등에 지친 쿠바 국민들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나섰고 정부는 강압적으로 대응했다.
□ 쿠바 사람들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은 건 미국 국내 정치였다. 트럼프 정부는 재선 도전을 앞두고 반공·보수주의 성향인 플로리다 쿠바계 유권자의 표심을 얻고자 자국민의 쿠바 여행과 송금을 제한하고 쿠바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던 전임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되돌리는 조치였다. 미국에 있는 가족·친지가 보내주는 돈에 의지해 온 많은 쿠바인에겐 살길을 찾아 나서야만 할 생존의 위기였다.
□ 관계는 여전히 냉랭하지만, 미국과 쿠바 정부도 머리를 맞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국은 밀려드는 쿠바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송금한도 증액, 비자 발급 확대 등으로 트럼프 정부의 실책을 지우고 있다. 쿠바 역시 사태를 방관하면 노동인구 급감이란 치명적 결과를 맞게 되는지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민생은 파탄인데 군사적 대립각만 세우는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에겐 여러 시사점을 주는 상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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