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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에 뇌물 뿌린 카타르... EU 투명성, 시험대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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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발칵 뒤집혔다. 그리스 출신 에바 카일리 유럽의회 부의장이 올해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된 것 때문이다. 유럽의회는 27개 유럽연합 회원국을 대표하는 입법 기구로, 부의장은 유럽의회 의원 705명 중 14명뿐인 고위직이다.
유럽의회는 카일리 부의장을 즉각 업무에서 배제하고 수사에 철저히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수사가 초기 단계라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는 데다, EU가 자랑해 온 부패 감시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벨기에 검찰은 카일리 부의장 등 유럽의회 관계자 5명을 뇌물수수 등 혐의로 9일(현지시간) 체포해 조사 중이다. '인권 탄압국인 카타르가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이 일었던 상황에서 카타르는 이미지 세탁 등을 목적으로 유럽의회에 접근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개별 인사의 구체적 혐의는 알려지지 않았다.
카일리 부의장과 함께 붙잡힌 용의자 4명은 모두 이탈리아 출신으로, 안토니오 판체리 전 유럽의회 의원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거액의 현금을 소지하고 있었다.
유럽의회는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은 10일 긴급회의를 거쳐 카일리 부의장의 권한 정지를 발표했다. 카일리 부의장이 속한 그리스 정당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과 유럽의회 사회당그룹도 당원 자격 정지와 제명 조치를 취했다.
유럽의회는 카타르 정부가 노골적으로 뇌물을 뿌렸다는 점에 경악했다. 이탈리아 언론 라 르푸블리카에 따르면, 카타르는 2016~2018년 사이 카일리 부의장에게 접근해 수차례에 걸쳐 뇌물을 건넸다. 이번 사건으로 "카타르의 노동권이 월드컵을 계기로 상당히 증진됐다"는 카일리 부의장의 지난달 발언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카타르 월드컵에 사용될 경기장을 짓느라 이주노동자 6,500명이 사망했고, 카타르 정부는 모른 척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카일리 부의장은 정반대의 얘기를 한 것이다.
부패 스캔들은 더 커질 수 있다. 벨기에 연방 검찰은 "'걸프 국가'(카타르)가 '상당한 돈'과 '중요한 선물'을 이용해 유럽의회의 여러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카타르 월드컵이 18일 끝나면 범죄 은폐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보고 수사에 속도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전 세계 인권, 민주주의, 투명성의 수호자를 자처해 온 유럽의회의 신뢰도는 한순간에 추락했다. 부패를 막을 장치도, 내부 윤리 의식도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EU 전문가 알베르토 알레만노 HEC파리(경영대학원) 교수는 "EU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부패 스캔들"이라고 말했다.
유럽의회는 파장을 최소화하고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다니엘 프러인트 유럽의회 반부패 실무그룹 공동의장은 "이번 사건을 완전히 해결하지 않으면 유럽의회가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다. 감시 시스템을 정비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 여파로 카타르와 EU의 협상은 당분간 멈출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회는 '카타르 국민이 최대 90일까지 역내에서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협상을 12일부터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수사가 끝날 때까지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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