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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칼협'에서 '중꺾마'로 바뀐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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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2022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인터넷 밈은(인터넷 밈은 인터넷 유행어라고 조금 어색하게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누칼협'이었다. 누칼협은 '누가 칼 들고 협박함?'의 준말이다. 용례는 다음과 같다. "달러가 왕창 오를 줄 알고 잔뜩 환전해뒀는데 생각 외로 내려서 수백만 원 손실을 봤어!" "ㅋㅋ 왜 징징댐? 누가 칼 들고 달러 잔뜩 사라고 협박함?" 뭐, 그런 식이다.
이 누칼협이란 말은 게임 로스트아크의 커뮤니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로스트아크에서 어떤 아이템이 출시되어서 그 아이템에 돈을 잔뜩 쏟은 사람들이 있는데,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출시된 것이다. 게임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먼저 출시된 아이템에 돈을 잔뜩 쓴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고소해했던 듯하다. 그래서 "누가 칼 들고 아이템 사라고 협박함?"이라고 비꼰 것이고, 그 조롱법이 인터넷 전체에 퍼져 나간 것이고.
나는 이런 종류의 인터넷 밈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생각하는 바를 미약하게나마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터넷과 함께 태어나 그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살아온 밀레니얼 세대는 인터넷과 현실의 간극이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우리는 현실의 현상을 인터넷 언어로 평가하고, 인터넷의 현상을 현실 언어로 평가한다.
그래서 2022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누칼협이라는 밈으로 조롱을 받았다. 이런 종류의 조롱을 가장 많이 받았던 것은 영끌족이 아니었나 싶다. 폭등하는 자산시장을 보고,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평생 집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빠져 온 곳에서 대출을 끌어모은 사람들 말이다. 그들 예측과 달리, 2022년에는 자산 대신 금리가 폭풍처럼 올랐다. 고통받는 영끌족이 엉엉 우는 꼴을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누가 칼 들고 영혼 끌어 집 사라고 협박함? 네 자유의지로 한 거 아냐?"
나는 이 밈을 들을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지 않아 사지가 꼬이는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영끌을 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이 밈에 깃들어 있는, 개인은 자기 행동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 강렬한 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개인은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불확실한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인생에 언제 어떤 실수를 할지 모른다. 자신의 실수로 이미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조롱하면서 '누칼협'이란 말로 고통을 더해주는 것이, 우리 세대의 마음인가 싶었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월드컵에서 우리는 기분 좋은 16강 소식을 들었다. 16강 진출이 확정된 후 선수단 태극기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2022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선수인 데프트와의 인터뷰 제목에서 유래한 이 문구는 SNS상에서 '중꺾마'라고 줄여 밈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 어떤 역경이 와도 가장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긍정적인 정신. 덕분에 나는 우리 세대의 정신 속에 강력한 의지와 긍정성 또한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번 해의 밈이 '누칼협'에서 '중꺾마'로 끝난 것은 아주 다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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