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이재명의 '민생' 구호가 공허한 이유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취임 이후 가장 즐겨 썼고 또 부각하고 싶어했던 단어는 민생과 경제일 것이다. 그는 당대표 출마 선언 때부터 “민생 제일”을 외쳤고, 최근 취임 100일을 맞아 낸 메시지에는 “민생과 민주주의를 지키며 흔들림 없이 걷겠다”고 썼다. 대선 후보 시절 '유능한 경제 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을 만큼 이 분야에 자신감이 넘치는 이 대표이다.
민생 해결사로 각인되고 싶은 바람과 달리 현실 속 이 대표는 겹겹의 사법 리스크에 둘러싸인 모습이다. 그는 전임 당대표들과 달리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건너뛰었다.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민생 메시지 대신 검경 수사 상황과 관련된 질문으로 회견이 채워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사법 리스크가 보름달을 가린 구름 걷히듯 말끔히 해소된다면 어떨까. 민생 전문가로서 이 대표의 진면목이 환하게 드러날까. 기자가 만난 민주당의 전·현직 경제통 의원들은 주로 "그렇지 않을 것 같다"에 손을 들었다. 문제는 이재명표 민생 해법 자체에도 있다는 냉정한 평가였다.
이 대표가 국회 입성 후 두 번째로 발의한 법안으로 주목받았던 불법사채금지법(대부업법 및 이자제한법 개정안)을 보자. 이 법안은 법정 최고 이자율을 초과하는 계약은 이자 계약 전부를 무효로 하고, 특히 이자율이 두 배를 초과하면 금전대차 계약 전부를 무효로 하는 강력한 규제를 담고 있다. 대부업체 등의 지나친 고금리로 신음하는 저신용자를 돕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당 정책위원회는 얼마 전 이 법안의 추진을 무기한 연기했다. 금리 상승 국면에 고금리 규제를 강화하면 자금 경색을 유발해 급전이 필요한 기업과 개인의 돈줄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 대표 측은 금융 여건이 급변한 탓이라지만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상승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 대표가 기본소득의 전 단계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추진했던 노인 기초연금 확대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지금은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모든 노인에게 주겠다는 것이 이 대표의 원래 구상이다. 하지만 재정이 너무 많이 들어 그보다는 돈이 덜 드는 기초연금 부부 감액제도 폐지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최근 공개 회의에서 이 대표는 부부 감액제도를 '패륜'으로 규정하며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관련 법안 처리는 최근 당내에서 제동이 걸렸다. 기초연금 확대는 국민 노후 보장 체계의 전체 틀 안에서 검토해야 할 문제로, 급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 국민연금 등 다른 제도와의 정합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 국회 보건복지위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퍼졌기 때문이다.
이들 사례엔 공통점이 있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시장이나 다른 제도에 미칠 영향을 간과하거나 지자체장 시절의 성공 경험을 과신해 급하게 전국 단위로 키우려 했다는 점이다. 민생 해법이 불완전할 때 이 대표 특유의 추진력은 불안 요소가 될 것이다.
민생 메시지가 좀처럼 국민들에게 가닿지 않는다면 그건 민생 언급 횟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각론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 이런 주변의 고언을 이 대표가 곱씹어 보면 좋겠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