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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가게 찾다 지쳐 직접 차렸어요"... '풀빵 장사' 뛰어든 2030

입력
2022.12.09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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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폭등에 계속 사라지는 붕어빵 노점
메뉴 다양화, SNS로 무장한 청년사장들
"큰돈 벌지 않아도 사업 경험 자체 소중"

지난달 23일 국화빵집 사장 이정수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노점에서 국화빵을 굽고 있다. 나광현 기자

지난달 23일 국화빵집 사장 이정수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노점에서 국화빵을 굽고 있다. 나광현 기자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골목. 어디선가 달큼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정체는 ‘국화빵’. 그런데 점포 모습이 우리가 알던 노점과 많이 다르다. 흰색 캐노피 천막 안에 알전구가 설치돼 있고, 재즈 음악도 흘러나왔다. 한쪽엔 세련된 ‘국화빵 포스터’도 붙어 있다. 가장 이질적인 존재는 사장님. 스물여섯 살 젊은 사장 이정수씨는 “겨울에 취미로 붕어빵을 팔아볼까 했다가 일이 커졌다”며 웃었다.

‘붕어빵의 계절’이 돌아왔다. 하지만 요즘 거리에서 풀빵(철판으로 된 틀에 액체 밀가루 반죽물을 부어 굽는 빵) 가게를 찾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다. 젊은 세대는 애플리케이션까지 깔아가며 점포 위치를 수소문하기도 한다. 그래도 눈에 띄지 않자 아예 직접 붕어빵 장사에 팔을 걷어붙인 2030이 늘고 있다.

젊은 감각으로 재편되는 붕어빵 시장

서울 마포구의 한 붕어빵 노점에 슈크림 메뉴가 보인다. 뉴스1

서울 마포구의 한 붕어빵 노점에 슈크림 메뉴가 보인다. 뉴스1

붕어빵 노점이 멸종 위기를 맞은 건 물가 상승이 가장 큰 몫을 했다. 밀가루, 식용유 등 밑재료부터 액화석유가스(LPG)까지 값이 뛰지 않은 게 없다. 8일 소비자물가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밀가루 1㎏ 평균 가격은 지난해 11월 1,488원에서 지난달 2,155원으로 44.8% 폭등했다.

재룟값이 치솟아도 ‘붕어빵은 저렴하다’는 인식이 강해 소비자 가격을 올리기는 어렵다. 서울 동작구에서 10년 가까이 붕어빵을 파는 장모(67)씨는 “지난해 한 통(20L)에 3만9,000원 선이던 LPG 가격이 5만2,000원까지 인상됐지만 판매가는 그대로”라며 “요즘엔 그저 ‘의리’로 장사한다”고 푸념했다.

지난달 붕어빵 창업을 준비하는 변모씨가 전봇대에 전단을 붙이고 있다. 사용료를 지불할 테니 자리를 내줄 가게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독자 제공

지난달 붕어빵 창업을 준비하는 변모씨가 전봇대에 전단을 붙이고 있다. 사용료를 지불할 테니 자리를 내줄 가게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독자 제공

‘생계형’ 장ㆍ노년들이 수지타산이 안 맞아 떠난 빈자리를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빠르게 메우고 있다. 장사 시작 계기는 간단하다. 붕어빵이 없어서다. 직장 동료와 함께 붕어빵 창업을 준비 중인 변모(26)씨는 “맛 좋은 붕어빵 가게를 찾아다닐 정도로 좋아하는데 많이 없어져서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진입 장벽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 풀빵 장사는 무자본 창업이 가능하다. 재료를 대주는 도매상이 기계 등 장비 역시 공짜로 빌려준다. 초기 재료비와 세팅비 수십만 원을 제외하면 큰 자금이 필요 없고, 제조 기술도 까다롭지 않다. 전국 가맹점에 재료를 공급하는 A잉어빵 관계자는 “10%도 안 되던 20, 30대 창업 문의가 올겨울 10건 중 3건까지 늘었다”며 “대개 취미 겸 사업 경험을 쌓을 요량으로 관심 갖는 젊은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승부수는 '차별화'... "장사도 경험"

지난달 23일 서울 연희동에서 국화빵 노점을 운영하는 이정수씨가 갓 구운 상품을 보여주고 있다. 팥, 슈크림, 초코 슈크림 등 젊은 세대가 좋아할 만한 메뉴로 구성했다. 나광현 기자

지난달 23일 서울 연희동에서 국화빵 노점을 운영하는 이정수씨가 갓 구운 상품을 보여주고 있다. 팥, 슈크림, 초코 슈크림 등 젊은 세대가 좋아할 만한 메뉴로 구성했다. 나광현 기자

폭등한 재료비를 만회할 신세대의 승부수는 ‘차별화’다. 이씨의 국화빵 가게는 노점치곤 드물게 반죽과 속 등 모든 재료를 손수 만든다. 오래 연구해 개발한 초코 슈크림, 누룽지 슈크림, 애플시나몬 맛 등 또래가 좋아할 만한 새 메뉴를 계속 내놓고 있다. 전략은 적중했다. 개당 500원인 이씨의 국화빵은 매일 조기 품절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도 강력한 무기다. 젊은 사장들은 준비부터 영업까지 운영 전 과정을 SNS에 공유해 입소문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노점의 최대 고민인 ‘자리’ 문제 해결 역시 전략적이다. 거리 아무 데나 점포를 차리는 대신, 자릿세(월 20만 원 선)를 내고 식당, 카페 등 옆에 둥지를 튼다. 변씨도 ‘붕어빵 장사 자리를 구한다’는 전단을 돌리자마자 점주들의 연락이 쏟아졌다. 서로에게 ‘윈윈’인 셈이다.

청년세대가 풀빵 장사를 매력 있는 아이템으로 받아들인 데는 낮은 리스크와 높은 접근성 등 사업적 장점뿐 아니라 자기주도적 가치관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Z세대(1996~2012년 출생)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의 노력으로 소득을 얻는 경험이 잦고, 경험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며 “수익을 많이 내지 않아도 경력을 쌓는 일종의 놀이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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