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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죽는데 인플레 여전... '스태그플레이션' 긴축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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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뚜렷해지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기류가 통화정책 당국을 진퇴양난에 빠뜨리고 있다. 치솟던 물가가 얼마간 잡힌 데다, 금리를 더 올렸다가는 가뜩이나 빠르게 가라앉고 있는 경기가 완전히 죽게 생겼지만, 그렇다고 긴축 기조를 누그러뜨리기에는 여전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 수위가 높고 불확실성도 큰 형국이다.
6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바클레이즈ㆍ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ㆍ씨티ㆍ크레디트스위스ㆍ골드만삭스ㆍJP모건ㆍHSBCㆍ노무라ㆍUBS 등 주요 외국계 투자은행(IB) 9곳이 밝힌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지난달 말 기준)는 평균 1.1%다. 이들이 예측한 올해 성장률(평균 2.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로, 한 달 사이 0.3%포인트 하락(10월 말 기준 1.4%)했다. 최근 공개된 한국은행(1.7%)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ㆍ1.8%) 등 국내외 주요 기관의 전망치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다.
기관별로 보면 전망치를 2.8%에서 1.1%로 1.7%포인트 낮춘 스위스계 IB UBS의 조정폭이 가장 컸고, 애초 역성장(-0.7%)을 점쳤던 일본 노무라의 경우 –1.3%로 ‘마이너스(-)’ 폭을 키웠다. 이들이 꼽은 전망치 하향 이유는 주택가격 하락과 금융 여건 악화에 따른 소비 감소 및 반도체 수출 부진 등이다. 고금리ㆍ고물가ㆍ고환율 등 3고(高) 위기 와중에 수출마저 고꾸라지며 심하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뒷걸음질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 생산이건 소비건 하나같이 위축 신호다. 생산지수든 가동률이든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 경기를 가리키는 지표는 이미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버티기 힘든 것은 내수 역시 마찬가지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11~18일 국민 1,000명 대상 설문 조사 결과를 토대로 내놓은 전망을 보면, 내년 가계 소비 지출은 올해보다 평균 2.4% 감소하게 된다.
물가 상승세는 한풀 꺾인 모습이다.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달보다 0.7%포인트 낮아진 5.0%를 기록했다. 농축수산물 가격 안정세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지만 수요 감소도 반영되기 시작한 것 같다는 분석이다. 이날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상 지속 가능성이 제기되며 반등하기는 했지만 10월 한때 1,400원대 중반까지 올랐던 원ㆍ달러 환율도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 감속 기대감에 하락세를 보이며 어느 정도 안정돼 가는 양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물가 안정과 환율 방어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긴축 고삐를 바짝 죄던 한국은행도 약간 주저하는 기색이다. “통화 긴축 속도를 재검토하고 집값을 연착륙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이창용 한은 총재의 최근 로이터 인터뷰 내용이 방증이다.
제동을 걸 시점이 됐다는 조언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나온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부 요인이 커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는 물가 안정보다 지금은 경기 침체나 자금시장 경색과 부동산 가격 폭락 등 고금리 부작용 완화에 더 신경 쓸 때”라며 “금리 인상을 멈춰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다른 면에 주목하면 딱 부러지는 판단이 가능한 형편인 것도 아니다. 인플레이션(5%대)이 기준금리(3%대)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고,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아직 기세가 등등하다. 의식주 가격 상승폭은 적어도 10년 내에는 보지 못한 기울기다.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가 당분간 감산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합의로 러시아 원유 공급이 줄어들 개연성이 커지는 등 국내 물가에 영향을 가할 국제 원유 시장 동향의 불확실성도 확대된 상태다.
신중론이 만만치 않은 배경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해 실물 경제 영향을 살피며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연준의 긴축 기조가 바뀌지 않은 데다 겨울철 유가가 어떻게 될지도 불투명하고 전기료 인상 역시 내년에는 불가피한 만큼 한은의 통화 긴축 기조 완화는 시기상조”라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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