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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우유팩·신문지 따로따로...분리배출만 잘해도 '폐지대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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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주말을 맞아 일주일간 집 안에 쌓인 쓰레기 처리에 나섭니다. 요즘 '친환경 포장'이 대세라 종이 포장지가 쏟아져 나오네요. 택배로 받은 상자 안에 물에 헹군 우유팩, 신문지, 이면지와 과자박스까지 담아 분리수거장 '종이' 자리에 던져 넣습니다. 오늘도 분리배출을 잘했다며 내심 뿌듯해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내놓은 폐지 중 제대로 재활용되는 건 50%가 채 되지 않습니다. 폐지도 종류별로 구분하지 않으면 질이 떨어져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폐지 재고량이 포화 상태를 넘어 '폐지 대란'이 임박했다는 우려도 커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재활용이 잘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폐지는 왜 계속 쌓이는 걸까요.
각 가정에서 배출한 폐지는 여러 경로를 통해 폐지 압축장으로 모입니다. 주택가의 경우 주로 '폐지 줍는 노인들'이 돌아다니며 쓸 만한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가져가거나 지자체 환경미화원들이 수거합니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나 대형마트를 비롯한 사업장, 학교나 빌딩 등은 민간 수거업체와 계약을 맺고 폐지를 판매하죠.
자, 이제 고물상이나 수거업체, 지자체 등에서 폐지를 잔뜩 실은 트럭이 줄 이어 폐지 압축장에 폐지를 와르르 쏟아붓고 갑니다. 대부분 도시 외곽에 있는 압축장에서는 이 폐지를 1톤짜리 덩어리로 뭉쳐 쌓아 놓고 종류별로 제지회사에 팝니다. 여기서는 폐지 덩어리의 '질'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폐지 상품은 비슷한 것끼리 모여 있는 겁니다. △종이팩과 종이컵 △프린트 용지와 책, 신문지 △박스 등 골판지끼리 말이죠. 나무에서 뽑아낸 천연펄프로만 만들게 돼 있는 종이팩과 종이컵의 경우 품질이 좋아 재활용 시 고급 화장지 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돌가루를 섞어 만드는 A4용지나 책은 다시 비슷한 종이로 만들거나 최소한 신문용지로 만들 수 있고요. 박스는 골판지로 재생됩니다. 폐지 덩어리가 같은 재질로 돼 있으면 그만큼 재활용되는 종이의 질도 좋아지고, 재활용될 확률도 높아지죠.
폐지 덩어리를 구매한 제지회사는 먼저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이후 약품을 푼 뜨거운 물에 폐지를 넣고 '해리' 과정을 거치는데요, 이때 종이가 물에 불어 작은 섬유입자로 풀어집니다. 이후 '탈묵'이라는 과정을 통해 종이원료 속 잉크 입자를 제거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원료와 약물을 일정 비율로 배합 및 압축·건조하면 새로운 종이로 재탄생합니다. 분리배출만 잘된다면 같은 종이를 10번 넘게도 재활용할 수 있다고 하네요.
최근 경기 하락과 맞물려 국내 폐지 재활용 시장에는 수차례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폐지 해외 수출이 막히고 국내 수요가 줄어들면서 재고가 많이 남았고, 이 여파로 폐지 가격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정에서 마구잡이로 섞여 나오는 폐지입니다. 그나마 종이끼리 모여 있으면 상황이 낫지만 지난 2일 찾아간 경기 남양주시의 한 폐지 압축장의 폐지 더미 속에는 먹다 남은 치킨부터 플라스틱 배달용기, 비닐, 음식물이 그대로 남은 컵라면 용기까지 가득했습니다. 가끔 동물 사체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나 아기 기저귀가 튀어나오기도 한다네요. 특히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는 폐지는 생활쓰레기가 30% 이상 포함된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최근 공동주택 경비원이 줄어드는 추세라 재활용품 분리배출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활쓰레기가 섞인 폐지 더미는 안 그래도 낮은 가격에서 더 낮은 가격을 받습니다. 단일 재질이 아니라 재활용이 어려우니 제지사에서도 꺼리고요. 처리가 안 되니 폐지 더미를 위험하게 하늘 높이 쌓아두는 수밖에 없는데, 최근엔 정부가 공공비축장을 마련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습니다. 더 이상 폐지 보관할 곳을 찾지 못하면 고물상까지 포화 상태가 돼 가정에서 폐지를 내놓는 것도 불가능해집니다. 폐지 배출량이 대폭 증가하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앞두고 폐지 대란이 가시화하고 있는 셈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일은 폐지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는 겁니다. 음식물이 묻었거나 은박지·완충재가 붙어 있는 종이, 사용한 휴지나 부직포 등은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문서를 파쇄한 세절지도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합니다. 겉이 종이 재질이더라도 안에 배터리나 건전지가 들어 있으면 화재 원인이 되니 반드시 떼어 배출해야 합니다.
특히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제품인 종이팩의 경우 꼭 씻은 뒤 따로 모아 버려야 합니다. 종이팩은 따로 모으면 질 높은 종이로 재탄생하지만, 일반 폐지 속에 섞이면 골판지 재료가 되거나 아니면 아예 태워지거든요. 일부 지자체는 종이팩 1㎏을 모아 가져오면 휴지나 종량제봉투를 주기도 합니다.
이제 올바른 분리배출은 '선의'가 아니라 '필수'입니다. 정윤섭 한국제지원료재생업협동조합 전무이사는 "현재 상황에서 '수거불능' 단계까지 가지 않기 위해서는 지자체에서 강력하게 홍보하고 단속해 아파트 단지 중심으로 제대로 분리배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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