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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은 보리를...'

입력
2022.12.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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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이케다 하야토

내각 총리대신 시절의 이케다 하야토. 위키피디아

내각 총리대신 시절의 이케다 하야토. 위키피디아


박정희 쿠데타 정권을 가장 먼저 공개 지지한 나라가 일본이었고, 당시 총리는 이케다 하야토(池田 勇人·1899~1965)였다. 1960년 총리에 취임한 이케다는 이듬해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국교정상화에 합의, 일 외무장관 오히라 마사요시를 앞세워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과 협상케 함으로써 65년 ‘한일기본조약’을 맺게 했다.

그는 교토대 출신으로 도쿄제국대 일색의 대장성(현 재무성)에서 장관을 지낸 실력자였다. 1958년 기시 내각의 국무대신을 거쳐 60~64년 총리를 역임했다. 대장성 시절부터 자유시장경제를 중시하며 국가의 시장 개입을 꺼렸던 그는 관료로서 정치인으로서 전후 일본 고도성장 시대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대장성 장관이던 1950년 12월 7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그는 사회당 의원의 쌀값 정책질문에 “소득이 적은 쪽은 보리를, 많은 쪽은 쌀을 먹는 경제원칙이 저의 소신”이라고 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언론은 그의 말을 “가난한 사람은 보리를 먹으라”고 바꾸어 소개했다.

전후 일본 농림성은 식량작물을 저가에 매수(공출)해 소비자에게 균등 매각(배급제도)했다. 소비자는 아무리 부자여도 일정 양만 구입할 수 있었다. 전시통제입법인 1942년의 식량관리법에 근거한 그 조치는 패전 후 암시장 확산의 폐해를 낳았다. 암거래를 통해 농민은 정부 수매가보다 나은 값에 쌀을 팔 수 있었고, 부자들은 쌀을 원하는 만큼 구할 수 있었다. 재정 부담은 해마다 누적돼 갔다. 그 관행에서 탈피해 시장경제에 맡기자는 게 이케다의 소신인 셈이었지만, 그의 비유적 표현은 결과적으로 적절치 못했다. 이케다의 와전된 발언은 이제야 간신히 쌀밥을 먹게 된 서민들에게 메이지 시대로 되돌아가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일본의 식습관도 서구화하면서 밀 소비가 빠르게 늘어났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밀 국제가격이 상승한 근년, 일본의 서민들은 '이제 가난한 사람은 쌀을 먹어야 하나'라고 자조한다고 한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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