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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보상’ 받아 ‘문과 침공’… 엉뚱한 칸막이 없앤 통합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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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성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 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지난달 17일 2023학년도 수능이 끝나자마자 광주의 A고교에도 학생들의 선택과목 변경 문의가 잇따랐다. 수학 영역 선택과목을 '미적분'으로, 국어 영역 선택과목을 '언어와매체'로 바꾸고 싶다는 요청이 대부분이었다. 모두 이공계열 학과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주로 선택하는 과목이다. 현행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2015 개정 교육과정) 이전 기준으로 보자면 문과에서 이과로 옮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내년도 학급 및 시간표 편성 작업이 마무리되는 와중이라 학교 측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한 교사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과목 변경 요청이) 지난해보다 갑절은 많아진 듯하다"고 했다.
'문이과 통합수능' 시행 2년 차인 올해, 학교 현장의 이과 선호 현상이 한층 강화하는 분위기다. 수능 가채점 결과를 보니 선택과목의 원점수가 같더라도 실제 입시에 반영되는 표준점수는 이과형 과목이 문과형을 앞지르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교차지원 기회가 훨씬 넓은 이과생들이 수능 선택과목에서 획득한 '이과 프리미엄'을 앞세워 이공계열은 물론 인문사회계열 학과까지 휩쓰는 이른바 '문과 침공' 현상 역시 이번 대입에서 재현될 전망이다. 고교에서부터 문이과 칸막이를 없애 양 분야의 소양을 두루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우겠다던 현행 교육과정과 수능 제도가 '이과 고교생'의 '문과 대학생' 진출로만 활짝 터준 꼴이다. 이로 인해 초중등 학생의 이과 쏠림과 대학 교육의 황폐화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통합수능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맞춰 2022학년도 수능(지난해 시행)부터 도입됐다. 현행 교육과정은 문이과로 구분된 기존 고교 수업 방식을 개편, 학생들이 공통과목을 이수한 뒤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도록 설계됐다. 이에 따라 수능 체제도 국어와 수학 영역은 '공통과목+선택과목'으로 바뀌었고 사회·과학 탐구 영역은 계열 구분 없이 최대 2과목을 택해 시험을 보도록 바뀌었다. 수학의 경우 공통과목인 수학Ⅰ·수학Ⅱ에다가 선택과목인 확률과통계·미적분·기하 중 1과목을 응시한다. 이과생은 미적분이나 기하, 문과생은 확률과통계를 주로 고른다. 국어는 독서·문학을 공통과목으로 문과생은 화법과작문, 이과생은 언어와매체를 선택하는 게 보통이다.
수능은 일부 절대평가 적용 영역(영어, 한국어, 제2외국어·한문)을 제외하고 표준점수가 산출된다. 수험생 원점수가 평균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나타내는 상대평가 지표로, 대입 전형에선 원점수가 아닌 표준점수 또는 표준점수 등급이 활용된다. 문제는 수학, 국어처럼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이 한데 묶인 영역의 표준점수 산출 방식이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공통과목 평균점수가 높은 선택과목 집단에 '보상'을 주는 조정법을 적용하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과생 선택과목에 상당한 보상이 주어졌다. 예컨대 미적분과 확률과통계에서 같은 원점수를 받았더라도 표준점수로 환산하면 미적분 응시생이 더 높은 성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종로학원이 올해 수능 가채점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달 20일 공개한 선택과목별 수학 표준점수 최고점(만점) 추정치는 미적분 145점, 기하 144점, 확률과통계 142점이다. 국어는 언어와매체 135점, 화법과작문 132점이다. 보통의 이과생처럼 미적분과 언어와매체를 선택해 수학과 국어 영역에서 모두 만점을 맞았다면, 확률과통계와 화법과작문에 응시한 만점 문과생에 비해 표준점수를 6점 더 얻는 것이다. 같은 조건에서 지난해 수능에서 발생한 점수 차는 5점이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표준점수 6점 차이라면 대학이 수학과 국어 영역에 부여하는 가중치에 따라 점수 차가 10점까지 벌어지는 효과를 낸다"며 "이 정도면 진학 가능한 대학 수준을 중위권에서 중상위권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점수"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문과생 강세 과목인 국어 영역의 표준점수 최고점(149점)이 수학(147점)보다 높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수능은 국어(135점)가 수학(145점)에 한참 뒤진다는 점도 문과생에게 악재다. 임 대표는 "지난해엔 이과생들이 교차지원을 해도 문과생들이 높은 국어 성적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지만, 올해는 국어가 수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되면서 이런 버팀목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교육계는 지금의 통합수능 체제가 유지되는 한 이과 프리미엄, 문과 침공의 난맥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능 표준점수 산정 방식, 대학의 교차지원 제도 등 기술적 요인부터 의학·이공계열 진학 선호, 학벌주의 등 교육문화적 요인까지, 하나같이 개선책을 찾기 쉽지 않은 구조적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어서다. 교육부는 연내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하고 2025학년도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에 나선다는 로드맵을 세운 터라 정부가 통합수능을 한시적 제도로 치부해 부작용을 방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학·국어 영역 표준점수를 산정할 때 선택과목 점수 조정을 거치는 건 어떤 과목을 택하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생기는 문제를 막기 위한 조치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현행 제도는 선택과목의 학습 난이도가 높으면 보상 점수를 줘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한다는 취지로, 같은 선택과목 응시생의 공통과목 평균점수를 개인 점수와 연동하고 있다. 하지만 보상이 결코 작지 않다 보니 제도 취지와 달리 이과형 과목을 택할 유인이 강해지고, 이로 인해 학생은 개인 적성이나 희망 학과와 무관하게 선택과목을 고르거나 핸디캡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개인 점수를 소속 집단의 점수와 연동시키는 점수 산출 구조가 정당한지 생각해봐야 한다"(장지환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교사)는 지적처럼 제도 재검토 요구가 적지 않지만, 평가원은 "선택과목별 유불리 현상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이규민 원장)며 현상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과 프리미엄은 이과생 수능 성적의 상대적 우위 때문이고 이는 학생들의 이과 선호 경향과 맞물려 있다. 청년 실업난이 고착화하면서 졸업 후 취업이 수월한 편인 이공계열 진학 수요가 늘어났고, 특히 상위권 학생들은 이른바 '의치한약'(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으로 통하는 의학계열 학과를 지망하며 이과형 과목을 선택하고 있다. 종로학원이 전국 52개 고교(자사고 28곳, 일반고 24곳)를 조사한 결과 올해 3학년 564개 학급 가운데 378학급(68.6%)이 이과, 177학급(31.4%)이 문과였다.
통합수능의 전제인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은 허울에 가깝다. 올해 6월 수능 모의평가에서 탐구 영역 선택과목(2개)으로 사회·과학 계열 과목을 하나씩 고른 응시생은 전체의 3%에 못 미쳤다. 학교 현장이 여전히 '이과는 과탐(과학탐구), 문과는 사탐(사회탐구)'이란 식의 이분법에 갇혀 있다 보니 통합수능에서 파생된 이과 프리미엄 문제도 근본적 해소가 요원하다.
또 다른 문제 원인은 대학의 '비대칭' 교차지원 제도다. 대부분의 대학은 의학·이공계열 학과에 지원할 때 수능 선택과목으로 이과형 수학 과목(미적분·기하)이나 과학탐구 과목을 응시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반면, 인문사회계열 학과엔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는다. 이과생은 계열에 구애받지 않고 지원 학과를 고를 수 있지만 문과생은 선택 폭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차별적 조건에 이과 프리미엄이 결합한 결과가 문과 침공이다. 이과생이 수학·국어 선택과목 점수 우위를 활용해 인문사회계열 학과로 교차지원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지원 기준으로 '학과'보다 '학교'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입시업체 유웨이가 지난해 입시에서 교차지원을 한 이과생 45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7%가 '대학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교차지원을 했다고 답했다. 상위권 이과생이라면 명문대 간판을 안전판으로 확보한 뒤 의학계열 진학을 노려 '반수'(학교에 적을 두고 대입 준비)를 하거나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게 현장 이야기다. 문과생 입장에선 선택과목 원점수가 자신보다 낮거나 그저 소속을 얻을 심산으로 지원하는 이과생과 경쟁해야 하는 형국이다.
문과 침공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서울 주요 대학 22곳의 지난해 정시모집 인문계열 지원자 1,630명을 대상으로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을 분석했더니 11개 대학의 교차지원 비율이 40% 이상이었다. 60%도 넘는 대학은 8곳이었고 이 중 2곳은 80%대였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서울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 대학 정시모집에서 교차지원이 가능한 인문사회·예체능 계열 합격자 486명 가운데 이과생(미적분·기하 선택)이 216명(44.4%)에 달했다.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예상된다. 최근 종로학원이 이과생 1,26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교차지원을 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가 745명(59.0%)이었고, 이들 가운데 73.7%(549명)는 교차지원 때 중시하는 요소로 '대학 브랜드'를 꼽았다.
이과 프리미엄이 고교 교육을 왜곡시킨다면 문과 침공은 대학 교육을 황폐화하고 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온 학생 상당수가 입학 직후부터 전공 학습을 등한시하고 반수나 자격증 공부에 매달린다. 의대를 지망하며 세 차례 수능을 치른 끝에 올해 서울 사립 명문대 경영학과에 교차지원 후 합격한 이모(21)씨는 "오로지 학교 이름만 보고 입학했는데 학과 동기 다수가 나처럼 교차지원한 경우"라며 "다들 '학점이 잘 나오면 로스쿨, 안 나오면 공인회계사'로 진로를 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반수나 재수, 학과 부적응 등으로 학적을 포기하는 일도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년제 대학에서 자퇴, 제적, 미등록 등으로 중도탈락한 학생이 9만7,326명으로 재적생(201만1,856명)의 4.9%에 달했다. 중도탈락 학생 수와 비율 모두 사상 최대다. 서울대(405명, 1.9%) 연세대(700명, 2.6%) 고려대(866명, 3.2%) 등 최상위 3개 대학의 평균 중도탈락률도 2.6%로 10년 전(1.3%)보다 2배 상승했다. 유웨이 조사에서 교차지원 학생의 57.5%는 교차지원을 후회한다고 답했다. 재학생의 잦은 휴학과 이탈은 등록금 수입 감소로 직결돼 대학엔 심각한 부담이다. 서울 소재 사립대 교수는 "학교에서 교차지원 입학생을 중도탈락 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이들의 탈락을 막기 위한 갖가지 정책을 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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