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차별 말자"는 공청회에, 국회는 정작 노숙인 출입을 막았다

입력
2022.12.01 12:00
수정
2022.12.01 13:5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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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야학서 활동하는 로즈마리씨
노숙인 차별 목소리 내려 국회 갔는데
신분증과 방문신청서 내도 출입 거부

국회 의원회관으로부터 출입을 위해서는 별도의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은 당시 로즈마리씨의 차림새. 홈리스행동 제공

국회 의원회관으로부터 출입을 위해서는 별도의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은 당시 로즈마리씨의 차림새. 홈리스행동 제공

노숙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차별 없는 건강권을 주제로 열린 국회 공청회에서 정작 노숙인의 출입을 막는 일이 벌어졌다. 이 노숙인은 공청회에 참석하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에 신분증 제시는 물론 방문 목적까지 밝혔음에도 별다른 설명없이 제지당했다.

노숙인 당사자 운동단체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해당 단체가 포함된 '차별 없는 의료실현을 위한 연대'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과 함께 11월 30일 국회 의원회관 2층 제7간담회실에서 '차별과 건강, 건강할 권리는 차별 없이 보장되고 있는가'라는 공청회를 열었다.

홈리스행동 야학에서 학생회장을 맡는 등 평소 노숙인 차별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온 로즈마리(활동명)씨는 공청회 참석을 위해 국회를 찾았고, 출입 절차에 따라 의원회관에서 방문신청서를 작성해 신분증과 함께 접수대에 냈다.

국회 의원회관의 1·2층 세미나실·식당 등 공용공간은 3층 이상의 사무공간과 달리 대개 방문 대상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방문증이 발급된다. 그러나 그를 막아 세운 국회 방호원은 "아는 사람이 확인을 해줘야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공청회를 위해 국회를 찾은 다른 방문객에게는 없던 절차였고, 이유에 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로즈마리씨는 "부지런히 찾아가 출입 절차도 거쳤는데 기다리라니 당황스러웠다"고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국회 본청이나 의원회관 등에는 방문증을 발급받으면 출입이 가능하다. 외부인은 안내실에서 절차를 밟아 이를 발급받을 수 있다. 사진은 국회 본청 안내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회 본청이나 의원회관 등에는 방문증을 발급받으면 출입이 가능하다. 외부인은 안내실에서 절차를 밟아 이를 발급받을 수 있다. 사진은 국회 본청 안내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홈리스행동 활동가가 찾아오자 의원회관 측에서는 "이런 복장을 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켜 왔기에 확인이 필요했다"며 출입을 허가했다. 로즈마리씨는 패딩 점퍼와 머플러 차림을 하고 거리 생활을 위한 짐이 든 유모차를 끌고 있었다. 또 활동가에게는 사과하듯이 "오해는 마시라"고 달랬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사과는 물론 해명조차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공청회는 노숙인을 비롯해 이주민, 장애인, 후천성면역결핍증(HIV/AIDS) 등 소수자라는 이유로 의료 차별을 당하는 이들의 현실을 짚고 제도를 정비하고자 만든 자리였다. 그런데도 당사자이기도 한 노숙인의 참석을 제한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공청회의 토론자로 나선 주장욱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이와 관련해 "홈리스가 현장에서 어떤 차별을 받는지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단순히 행색으로 통제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면서 "홈리스가 마주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홈리스행동 측은 또 "홈리스를 비롯한 빈곤층은 계절에 맞춰 복식을 갖추기 어렵고, 특히 거리 생활하는 분들은 짐을 바리바리 싸서 다닐 수밖에 없다"면서 "행색을 이유로 다른 이들에게는 요구하지 않았거나 못했던 별도의 절차를 요구한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했다.

국회 의원회관 측에서는 "(해당 노숙인이) 국회 경내에 진입할 때 드물게 유모차를 가지고 있어서 근무자가 보수적으로 판단하게 된 것 같다"면서 "공청회를 연 의원실에 확인을 하려는데 활동가가 찾아와 함께 들어가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근무자는 당사자에게 사과를 드리고 싶어하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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