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CEO, CFO는 알지만 CXO는 처음 들어보셨다구요? 고객의 경험(eXperience)이 중요한 여행 스타트업 등에서 부쩍 늘고 있는 직책입니다. 이처럼 요즘 스타트업은 강조하려는 분야에 특별한 책임임원을 두어 각자 강점을 더욱 깊게 파고드는 경영 전략을 구사합니다. 스타트업이 어떤 C레벨(분야별 최고책임자)을 두는가를 보면 그 기업의 지향점을 한 눈에 알 수 있겠죠? 스타트업을 취재하는 이현주 기자가 한 달에 두 번, 개성 넘치는 C레벨들을 만나 그들의 비전과 고민을 듣고 독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올 한 해 스타트업에서 채용한 C레벨(CEO 등 C로 시작하는 최고책임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최고경영진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C레벨은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 등에 국한됐다면, 스타트업의 C레벨은 최고제품경험책임자(CXO), 최고사업개발책임자(CBDO), 최고전략책임자(CSO), 최고법률책임자(CLO), 최고지식재산권책임자(CIPO), 최고인사책임자(CHRO),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등으로 분화되고 있다. '무지개빛 C레벨'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스타트업 C레벨은 왜 다양할까? 스타트업 고유의 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소수의 인원으로 빠르게 사업 모델을 수립한 뒤, 이를 시장에 즉시 적용하고 소비자 반응을 살펴, 사업 모델을 검증 내지 수정하는 전략을 택한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승패를 좌우하는 열쇠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스타트업은 조직 분위기가 수평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혁신을 일으키고 빠르게 성장하려면 신속한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 조직 구조가 정형화돼 있는 기존 기업과 달리, 성장하는 단계에 맞춰 각 분야에서 주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C레벨을 영입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창업자들이 만든 비즈니스 모델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뒤에는 대기업이나 빅테크 기업, 이미 성공을 경험한 스타트업 출신 인재들이 C레벨로 투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업 아이디어가 검증된 뒤에는 기업의 체계를 갖추는 게 꼭 창업자들의 몫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미국 기업들은 외부에서 연륜과 경험을 갖춘 C레벨을 영입하는 문화가 꽤 오래 됐다"고 설명했다. "구글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공동 창업했지만, 나중에는 에릭 슈미트가 CEO 역할을 맡았던 게 대표적"이라고 전 교수는 예를 들었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이 어떤 C레벨을 영입하느냐에 따라 스타트업의 현재 취약점이나 앞으로 주력할 분야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스타트업에 C레벨이 생긴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조직이 생겼다는 것이 아니라, 해당 조직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일종의 상징성을 만드는 의미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신산업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법조인 출신 C레벨을 영입하거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보안 전문가를 채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다만 스타트업이 무작정 외부에서 C레벨을 수혈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은 "대기업에서 주어진 일만 했거나, 자본이 풍부한 곳에서 경력을 쌓아온 사람들이 무조건 스타트업에서 일을 잘하리란 보장이 없다"면서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뛰어드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