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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앞바다 63개 섬 거느린 '군도의 왕'…젊은 어부들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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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전북 군산 선유도가 다시 북적이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선유도 방문 관광객은 288만여 명이다. 국내 주요 관광지 방문객 중 ‘깜짝’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도 약 233만 명이 방문해 4위를 기록, 상위권에 안착했다. 인구 50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섬에 연간 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면서 고려시대 해상물류의 중심지로서 누렸던 위용을 되찾고 있다.
지난달 15일 군산 비응항에서 새만금방조제 길을 따라 30분가량 차로 달리자 야미도와 신시도, 무녀도를 지나 선유도가 눈에 들어왔다. 2017년 섬을 연결하는 도로가 개통되면서 배를 타지 않고 선유도에 한달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지 5년째다. 선유도를 향해 달리다 보면 바다 사이로 섬과 섬들이 육지의 산맥처럼 이어지는 풍경을 마주한다. 선유도를 중심으로 무려 63개의 섬(유인도 16개ㆍ무인도 47개)이 펼쳐져 있는 고군산군도다.
고군산은 선유도의 옛 지명인 ‘군산도’에서 유래했다. 군도의 중심에 위치한 선유도는 ‘군도의 왕’이라 불렸다.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와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를 오가는 뱃길의 주요 길목이었던 선유도에서는 해양문물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크고 작은 섬들은 풍랑을 피할 수 있는 병풍 역할을 해 ‘서해 최대의 기항지’로도 꼽혔다. 호남평야에서 나는 기름진 곡식과 풍부한 어장까지 끼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다.
선유도의 위상은 고려시대부터 기록으로 전해진다. 1123년 고려 개경으로 가던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은 견문록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군산도에 도착하니 6척의 배가 와서 무장한 병사를 싣고 징을 울리고 고동나팔을 불며 호위했다. 연안에 기치를 잡고 늘어선 자가 100명이나 됐다”고 묘사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군산도는 천혜의 항구와 어장이 있어 고기잡이철이 되면 각 고을 장삿배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주민들이 부유했다. 집과 의식을 꾸미는데 그 사치함이 육지보다 심하다”고 기록했을 정도다.
실제 섬 중심에는 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은 망주봉 주변에 왕이 임시로 머물던 숭산행궁과 사신을 맞이하던 군산정, 바다신에게 해양제사를 올린 오룡묘, 사찰인 자복사 등 과거 선유도의 위상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인근 해역에서는 고려시대 도자기류와 유물 운반선으로 추정되는 난파선 등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올해 4월 선유도 해역에서 고려청자 125점, 분청사기 9점, 백자 49점 등 200여 점의 유물을 발견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서해의 군사적 요충지 역할도 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심해지자 고려 왕조는 선유도에 수군기지를 두고 대응했다. 조선 개국 초기 '수군만호영'이라는 수군기지가 선유도에 설치됐고, 세종 때 수군기지가 군산으로 옮겨가면서 지명도 군산도에서 ‘고군산’으로 바뀌었다. 선유도는 일제강점기에 생긴 이름이다. 수군기지가 있던 선유도 진말에는 지금도 당시 파견됐던 수군절제사 선정비(백성을 어질게 다스린 관리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5기가 세워져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명량대첩 후 북상해 선유도에서 전열을 재정비했다.
산업화 시대 도시화로 선유도도 쇠락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활기가 다시 돌기 시작한 건 2017년 새만금방조제와 이어지는 ‘고군산군도 연결 도로’가 개통되면서다. 군산에서 차로 30분이면 선유도에 도착할 수 있게 되면서 관광객이 늘자, 섬에는 다양한 레저시설과 음식점, 카페, 숙박업소가 생겼다. 선유 2구 이근중 이장은 “도로가 연결되기 전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는 조용한 섬이었다”며 “도로가 개통되고, 코로나19 유행으로 섬 여행이 각광을 받으면서 관광객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삶도 달라졌다. 어업을 생계로 하는 주민들이 1,000가구가 넘었지만, 어족자원이 줄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주민 수는 271가구, 449명(올해 9월 기준)으로 줄었다. 여느 섬처럼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자다. 하지만 도로가 개통되고 섬이 개발되면서 숙박업과 요식업에 종사하는 젊은층이 입도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3040세대의 귀도다. 3년 전 귀도해 꽃게 어업을 시작한 이기영(42)씨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내 사업을 하고 싶어 섬으로 돌아오게 됐다”며 “처음에는 숙박업을 생각했지만 가업을 잇기 위해 어업을 하게 됐다”고 했다. 4년 전 김 양식을 시작한 이정우(44)씨도 “숙박업을 해봤지만 비수기가 있어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아 어업을 선택했다”며 “도로가 연결되면서 군산에서 오가며 어업을 할 수 있다는 이점도 크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 유입이 늘고 있지만 섬의 인구 감소와 어업 쇠락을 막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선유 3구 이성호 이장은 “젊은 세대들이 섬으로 들어와도 여기서 자녀를 키우고, 여가를 누리기가 힘들다 보니 섬에서 생활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좀 더 장기적으로 삶의 터전으로서 섬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업 안정화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선유도 해역은 조기와 병어, 갈치, 멸치 등 다양한 어종이 풍족했던 황금 어장이었다. 김과 바지락 등의 주산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만금방조제 건설과 기후온난화 영향으로 생태계에 변화가 생겨 어종이 급감했다. 이성호 이장은 “새만금방조제 등으로 물길이 달라지면서 이전에 잘 잡히던 곳에서 고기가 없어졌다”며 “특히 조류 흐름이 중요한 바지락 폐사량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군산시가 어족보호를 위해 치어를 방류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바다낚시를 하는 레저용 보트가 규제 없이 무분별하게 바다를 장악하면서 주민들의 생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이에 군산시도 섬 살리기에 총대를 멨다. 시는 총 사업비 816억 원을 투입해 어항시설 및 주민소득 기반시설을 조성해 어민 소득 증대 및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어촌뉴딜 300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낙후된 어촌 시설의 현대화를 통해 주민들의 소득증진과 생활여건 개선에 나서고 있다”며 “어민과 관광객들의 상생을 도모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위치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인구 271가구, 449명
주요 특산품 김 바지락 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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