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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만 보이고 괴로웠는데... 마시고, 듣고, 춤추다 보니 어느덧 명상이더라 [마음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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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전문 심리상담을 받거나 심리학 관련 도서를 읽다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제안이 있다. 바로 지금 여기서의 감정이나 감각을 잘 들여다보라는 것. 그래서 나의 감정과 반응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 이를 통해 누구나 곱씹어본 적 있을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분명 마음돌봄을 위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일은 즐거웠으나, 어느새 내면의 여유는 놓치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게 주어진 일상을 '해치우면서' 살고 있다는 느낌. 이러다가 또다시 세상의 자극에 휩쓸린 채 '나'를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우려 속에 "명상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최근 제주 서귀포시 소재 웰니스 복합문화공간 '취다선'을 찾았다. 지난해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는 건강한 제주 여행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제주 웰니스 관광지 11곳을 신규 선정했다. 취다선도 그중 한 곳이다. 웰니스(Wellness)란 웰빙(Wellbeing)과 건강(Fitness) 또는 행복(Happiness)의 합성으로, 신체·정신·사회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의미한다.
차(茶)와 명상을 기반으로 하는 이곳은 성산 일출봉과 마주하고 있었다. 제주의 동쪽 끝 마을 오조리(里)라는 이름은 '나를 비춘다(吾照)'는 의미를 지닌다. 2018년 10월 세워진 공간의 내부에는 다실이 마련돼 있어 차를 우려마시는 행다(行茶)를 경험할 수 있다.
차 생활을 40년 넘게 해온 일소(一笑) 안대진 대표는 명상을 위해 카자흐스탄까지 다녀왔다. 2008년 제주에 내려온 그는 '차생활연구소'를 통해 차와 명상을 통한 행복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세웠다. 음식 솜씨가 좋은 아내가 리조트 옆 식당에서 투숙객들을 포함한 손님들의 조식을 챙겨주고 있고, 서울에서 큰 출판사를 다녔던 첫째 딸과 사위가 현재는 매니저로 함께 일을 하고 있다. 10대 때부터 인도의 유명 명상센터인 오쇼 라즈니쉬 센터에서 유학을 했던 둘째 딸이 동적 명상 수업을 진행한다.
차, 명상, 움직임. 안 대표는 "이는 '가짜의 나'와 '진짜 나'를 구분하고 '진짜 나'를 발견하는 내면여행의 도구가 돼 준다"며 "차의 에너지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호흡명상을 통해 고요해진 마음을 느끼다보면, 내면 깊은 곳에서 '나의 본성이자 행복'인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안 대표의 호(號)인 '일소(一笑)'의 뜻도 '하나의 웃음'인데, 이 웃음은 결국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안 대표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2시간 동안 차, 명상, 운동을 해보라"며 "그걸 통해 갈등과 고통 등 내면의 오염을 씻어냄으로써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권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마음청소'인 셈이다.
이곳을 찾은 날은 창립 4주년 명상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차와 명상, 춤과 음악으로 내면을 공명하는 게 핵심이다. 리조트 문을 열자 통유리 너머 우도가 보이고 건물 곳곳에 화려한 벽화와 도예품이 눈에 띄었다. 이곳을 열기 전 안 대표가 직접 만들어온 작품들이었다.
오후 5시 30분쯤 취다선 명상실에 들어섰다. 히말라야 싱잉볼과 기타, 다기(茶器)들이 놓여있었다. 쭈뼛쭈뼛 어색하게 방석 하나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나름대로 유료 명상 프로그램도 몇번 들어봤는데 타인이 있으니 괜스레 긴장되고 시선이 신경 쓰였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며 불이 꺼지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피리를 불며 등장했다. 공간 내부를 한 바퀴 돌며 연주를 하던 그는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곡조가 곁든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읊기 시작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20년 넘게 대금을 연주하고 작곡을 했다는 음악 명상 안내자 차승민씨는 노래 중간중간 '가냐 무드라(엄지와 검지를 끝에 붙여 동그랗게 한 다음 손 등을 위로 향하게 하는 손 동작)'를 취했다. 프로그램 후 물어보니 가사에 몰입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나온 것이라고 했다. 차씨는 3년 전 번아웃과 공황장애가 찾아온 후 요양차 제주로 내려왔다가 현재는 차와 음악 등을 매개로 명상 수업을 이끌고 있다.
이후 차 명상이 시작됐다. "오감을 느끼되 한 번에 한 감각에만 집중하라"며 "그렇게 감각을 통해 현존함으로써 행복과 기쁨을 느끼길 바란다"는 안내가 나왔다. 세 명의 안내자인 '다연' '유민' '수현'이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참여자들은 눈을 감고 차분히 기다렸다. '쪼르르르.' 고요함 속에 물을 따르는 소리만 들렸다.
각자 차를 받은 참여자들은 총 3번에 나눠서 차를 음미했다. 안내자는 "찻잔을 들고 잔의 질감과 무게 등을 느껴보라"고 안내했다. 처음 차를 입에 넣고 안내에 따라 명상을 진행해야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꿀꺽 삼켜버렸다. "두 번째 때는 오물오물 입 안에서 차의 맛과 향을 느껴보고, 세 번째 때는 그저 머금고 있으라"는 안내가 있었다.
눈을 감고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바라보려고 했지만 왼쪽 다리에 쥐가 나서 도통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침을 삼킬 때도 꼴깍 소리가 날까봐 눈치가 보였고, 옆사람이 자꾸 안내 전에 뭔가를 하려는 게 느껴져 괜히 신경이 쓰였다. '이렇게 차를 마시는 행위 안에서도 내면에 집중하는 게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일상에서 타인을 매우 의식하면서도 정작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앰비언트음악 명상 시간이 왔다. 앰비언트음악은 영국에서 유래된 전자 음악으로, 베이스를 깔아주는 분위기 같은 요소들이 주(主)가 되는 장르다. 눈을 감고 감상하는데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등이 연주자 '새들' 김우림씨의 일렉 기타와 함께 어우러졌다. 대학에서 클래식기타를 전공한 김씨의 활동명 '새들'은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풍경을 좋아해서 지었다고.
명상 초반에만 해도 신체 감각을 그저 느껴보라는 안내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움직임이 신경 쓰여 마음이 괴로웠다. 하지만 정작 내 몸을 조금씩 움직여보니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동적 명상 시간이 다가왔다. 춤 명상 안내자이자 안 대표의 둘째 딸인 '슈냐' 안슬기씨는 "내면의 소리를 자유롭게 몸으로 표현하는 시간"이라며 "두려움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연민과 자비 등으로 승화시키는 '치유'의 시간을 갖자"고 했다. '슈냐'는 산스크리트어로 공(空)을 뜻한다.
빠른 비트의 음악이 나오면서 조금씩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춤과는 거리가 먼 기자는 그냥 스트레칭 정도만 하다가 조금씩 손목, 발목, 팔 등을 털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나는 취재하러 온 사람인데 체면을 벗어던질 순 없어.' 다행히 모든 조명이 다 꺼져서 그런 걱정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몸을 움직이다가 몰래 실눈을 떴는데, 다른 참여자와 눈이 마주쳐 민망하기도 했다.
이전 훌라댄스 체험 때는 정해진 안무를 따라하면 됐는데, 이번에는 내 걸 그대로 표현하려니 어려웠다. '나만의 고유성과 주체성을 표출해본 적이 얼마나 있었나'라는 생각에 스스로가 안쓰럽기도 했다.
점점 과열되는 분위기 속에서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불교에서 많이 나오는 주문인 '옴마니반메홈'이 비트박스처럼 빠르게 나왔다. "지금 느껴지는 모든 걸 다 느끼고 분출해내라"는 안내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데, 무의식적으로 발로 마룻바닥을 크게 굴렀다. 내면의 짜증과 분노가 빠져나간다는 상상을 하면서 더 크게 쿵쾅댔다. 평상시에는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압박에 전혀 상상조차 못할 행동이었다. 내면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그대로 빠져나오는 느낌에 속이 시원하기까지했다.
남편과 함께 이곳을 찾은 직장인 장다혜(30)씨는 "평소 명상이라고 하면 호흡에 집중하고 잡념을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춤명상은 오히려 몸을 움직여 내 안의 잡념을 발산하는 느낌이라 색달랐다"고 밝혔다.
프로그램 종료 전, 안슬기씨의 선창으로 다같이 만트라(주문)를 외웠다. '오 사랑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차, 음악, 춤의 매개체를 통해 마음속에 사회적 시선, 과민한 각성, 남들과의 비교가 가득 차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장 반나절의 명상을 통해 모든 걸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일상에서도 내면을 잘 관찰하며 스스로를 잘 다독일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명상실을 빠져나왔다. 사랑과 감사와 수용의 메시지가 현실에서도 내 안에서 공명하기를 바라며 서울로 돌아오는 길, 심호흡을 길게 내쉬며 번잡한 공항 안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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