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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확충이 ‘웰 다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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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환자 A(68)씨는 지난해 봄 암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 최근 병원으로부터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절망에 빠졌다. ‘호스피스(Hospiceㆍ임종 간호)’ 병동에 입원하길 원했지만 입원할 병상이 꽉 차서 한 달을 기다리다가 입원도 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사회적으로 웰 다잉(well dying)과 존엄사 논의가 활발하지만 아직 고민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어요. 천천히 죽어가고 있지만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죠.언제 죽는다는 걸 아느냐 모르냐 차이예요. 그게 기회일 수도 있어요. 새롭게 발견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다고 느낄 수 있는 기회죠.” 지난해 방영된 한 드라마 속에서 호스피스 병동 수녀가 읊은 대사의 일부다.
실제로 오랫동안 호스피스 병동에서 존엄한 임종을 돕고 있는 카리타스 수녀는 “호스피스 병동은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니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존엄한 임종을 맞고 싶어하는 말기 암 환자 대부분은 호스피스 병동에도 가지 못한 채 목숨을 잃는다.
말기 암 환자의 통증 완화와 임종 관리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이 전국적으로 88곳(1,400병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중 절반가량이 국공립 의료기관에 설치돼 있고, 전체 호스피스 병상 가운데 상급종합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5% 미만이다. 서울에서는 서울성모병원(23병상)과 고려대 구로병원(10병상)에서만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암으로 목숨을 잃은 환자 8만2,000여 명 가운데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맞이한 환자는 20% 정도(1만9,185명)에 불과했다. 현재 호스피스 병동은 말기 암을 비롯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만성 호흡부전, 만성 간경화 등 5개 만성질환에 노출된 환자만이 이용할 수 있는데 이들 5개 만성질환으로 사망한 사람 가운데 10% 정도만 호스피스 혜택을 받았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려는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은 왜 턱없이 부족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호스피스 치료 수가(酬價)가 워낙 낮아 병원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치료 전담 의사도 턱없이 부족해서다. 최근 한 서울 지역 대학병원은 호스피스 병동을 포기할 뜻을 내비쳤다. 낮은 수가로 인해 매년 10억 원 넘게 적자를 내고 있는 데다 전담하는 의사마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재정 타령만 하면서 웰 다잉 복지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연명 치료에 쏟아붓는 재정 일부를 웰 다잉 복지로 돌리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전국 호스피스 병상 대기 환자, 대기 중 사망자 현황 등 관련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호스피스 병동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입원형 호스피스 지원이 어려우면 ‘가정형 호스피스’ 활용도를 높이는 방법도 있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익숙한 자기 집에서 죽음을 맞게 하자는 취지에서 2016년부터 시작됐지만 유명무실한 게 현실이다. 가정 전담 간호 인건비를 보전하고 의사의 가정 방문 수가를 현실화해 가정형 호스피스를 활성화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웰 다잉 복지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편안한 죽음을 위한 ‘의사 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려는 논의가 한창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삶의 마지막을 가족 품에서 편안하고 품위 있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를 확충하는 것이 웰 다잉 복지의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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