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떫어도 고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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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러운 다홍빛 감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텁텁함이 입속을 가득 채운다. 진흙처럼 응어리진 감즙이 입천장 곳곳에 달라붙는다. 바로 떫은맛이다. 모래 한 주먹을 삼킨 듯 금세 목이 막히고 딸꾹질까지 난다. 이런 부정적 경험이 동반되는 맛이라 그런지, 맛을 말하는 대다수가 떫은맛을 열 바깥으로 제외한다. 한창 감이 많이 나는 이맘때인데, 대접받지 못하는 생감으로서는 억울할 일이다. 싱싱한 감을 바구니에 담아서 한쪽으로 밀어놓고 삭을 때까지 기다리는 주인이 감은 야속할지도 모를 일이다.
떫다는 맛은 '설익은 감의 맛처럼 거세고 텁텁한 맛'으로 서술된다. 텁텁하다, 떠름하다, 떨떠름하다, 떫디떫다, 삽삽하다 정도로 강도를 달리 표현한다. 그 떫은맛의 기억을 되새긴 탓인지, '하는 짓이나 말이 덜되어 못마땅함'이란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기분을 뜻하는 '떫다'의 비슷한 말은 '못마땅하다', '언짢다'이다. '떫은 표정', '떫은 얼굴'의 앞뒤로 부정적인 사건을 달고 있다. 한때 '왜, 떫어유?'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낸 '떫다'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온다. 그리고 떱다, 떠럽다, 떠룹다, 뜳다, 뻐데데하다, 조락조락하다, 조락지다, 쪼랍다, 찌이다, 초랍다, 턻다, 틃다 등 무수한 방언형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사용 범위로나 한국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우리말이다.
세상에는 달고 짜고 시고 쓴 보편적인 맛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교과서에서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고 배운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서양인의 기준으로 설정된 맛의 범주가 아닌가? 한국인의 식탁에는 매운맛이 올라가지 않는 날이 없다. 한국인이 즐기는 매운맛도, 부정적 감정으로 쓰이는 떫은맛도 우리 맛이다. 기분이 언짢다는 '입맛이 떫다'를 '입맛이 쓰다'로 바꿔 쓰는 것을 보면 떫은맛을 삼키는 고통이 작지는 않음이 분명하다.
문득 '떫기로 고욤 하나 못 먹으랴'는 속담이 눈에 들어온다. 다소 힘들다고 그만한 일이야 못하겠느냐는 말이다. 또 '떫은 배도 씹어 볼 만하다'는 옛말도 있다. 시고 떫은 개살구도 자꾸 먹어 맛을 들이면 그 맛을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정을 붙이면 처음에 나빠 보이던 것도 점차 좋아진다는 비유이다. 반쯤 남은 생감이 아직 눈앞에 있다. '이겨 볼 고통' 정도로 생각하고, 오늘은 평소에 관심 없던 이 떫은맛을 즐겨볼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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