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충돌 직전에 봉합 성공한 정기국회
대통령과 여당엔 국정쇄신에 나설 기회
야당도 내로남불·무책임 폭로 벗어나야
정면충돌로 치닫던 정기국회가 막판에 봉합되는 모습이다. 비극적인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 건이 지렛대가 되었다. '선 예산안 처리, 후 국정조사 실시'가 주고받은 절충 지점이다. 여당은 23일 의원총회를 열어 당론을 수정했고, 양당 원내 대표들의 합의가 성사됐고, 24일 국정조사 계획서가 본회의를 통과했다. 예산안은 정기국회 폐회일인 12월 9일까지는 여야 함께 처리할 것으로 보이고, 주요 쟁점 법안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진도가 나가지 못할 전망이다.
한때 용산과 여의도 주변에서는 야당 단독 처리, 준예산 불사, 대통령 거부권 등 강경 시나리오가 나돌기도 했다. 그런데 300명 넘는 젊은 생명들이 압사와 중경상을 당한 참사가 10월 29일 벌어졌다. 그날 저녁 '국가는 없었다'. 112 통화기록만 보더라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퇴진 없이는 진정한 추모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경찰이 경찰을 수사한다니 국민적 신뢰는 애초 한계가 있었다. 야당은 국정조사를 밀어붙이려 했고, 인내하던 유가족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권 수뇌부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음을 인지했고, 야당은 국정조사의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여야 합의가 필요했다. 이렇게 국정조사의 윤곽이 잡히자 예산안 등 주요 현안들이 바로 연계되었다. 꽉 막힌 정치가 숨쉴 수 있는 좁은 공간은 그렇게 민망하게 열렸다.
연말 경제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깊어지고 있다. 자금시장 경색을 넘어서 곳곳에서 부실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부동산 PF의 부실, 거기에 일부 건설사와 중소 증권사 등이 신용보강해준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의 경색이 발등의 불이다. 금융당국이 나름 간접 수혈에 나서고 있으나 위험 관리 수단의 적절성과 옥석 구분은 늘 논란거리다. 한국은행은 25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0.25%p 소폭 올렸다.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로 대폭 낮추는 등 경기와 자금사정 등에 대한 우려의 발로였다. 한편 정치권은 전기료 현실화에 대해서는 나서지 않고 한전채 발행 한도만 높여주었다. 한전의 과도한 적자와 채권 발행이 자금시장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정치는 이렇게 무책임하다.
이번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매개로 한 휴전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죽기살기식으로 서로를 제압하려는 적대의 정치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밀어붙이면서도 독선의 굴레를 쓰지 않으려는 것이고, 민주당은 가로막으면서도 비토의 굴레를 쓰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2024년 총선도 의식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그 짧은 봉합의 시간을 여야가 의미 있게 쓰면 어떨까. 헛된 기대일지 몰라도, 그간의 관성을 내려놓고 쇄신의 구상을 가다듬는 것이다. 국정이 이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윤 대통령은 30% 안팎의 지지도 고착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국정 어젠다와 운영방식, 그리고 사람을 포함한 국정 전반을 과감하게 쇄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총선이 다가올수록 국민의힘 출마자부터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 할 것이다. 민주당은 강성 당원보다 상식의 국민 곁으로 다가와야 한다. 내로남불과 무책임한 폭로에 대한 자정능력부터 회복하고, 정책에서도 유능하게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결국 누가 나라를 미래로 이끌려 하고 누가 힘든 국민들에게 곁을 주려고 노력하는가, 이것이 관건이다. 일방적 독주나 정략적 아귀다툼은 결국 각자의 정치적 무능함과 시대착오성을 드러낼 뿐이다. 총선이 다가오면 또다시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정치세력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도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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