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한국사 교과서에서 사라지나”

입력
2022.11.23 16:01
수정
2022.12.0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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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2022 개정 교육과정'서
학습요소 삭제로 기술 근거 사라져
유족회, 지역정치권 등 강력 반발

제주43평화공원에서 진행된 4.3추념식 전경. 김영헌 기자

제주43평화공원에서 진행된 4.3추념식 전경. 김영헌 기자

정부가 제주4·3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기술할 근거를 없애기로 하면서 제주 정치권과 4·3유족회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3일 제주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교육부가 2025년부터 시행할 예정인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행정예고했는데, 모든 교과의 자율성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학습요소'를 삭제했다. 학습요소'는 교과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할 핵심 요소를 말한다.

제주4·3은 ‘2015 교과과정’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학습요소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2020년부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 모두에 제주 4·3이 기술됐다. 또 학습요소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제주도교육청이 각 출판사에 제시한 '4·3집필기준'을 토대로 중학교 역사교과서 7종 중 5종에 기술됐으며, 내년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11종 중 4종에도 담길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학습요소 삭제 추진으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제주4·3을 의무적으로 기술할 근거도 사라지게 됐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가 행정예고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확정 고시될 경우 2025년 이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제주 4·3을 출판사 '입맛'에 따라 기술 또는 제외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교육부의 방침에 4·3유족회와 지역 정치권 등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정의로운 역사의 흐름을 역행하는 교육부의 일방통행식 교육정책을 철회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유족회는 “교육부가 민주주의를 위시한 교과의 자율성 강화를 명목으로 억지로 제주4·3을 도외시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민심을 외면하고 비열한 일방통행식 작태”라며 “유족들은 교육부에 깊은 배신감을 느끼며 시대착오적 발상을 조속히 철회되길 바란다. 민의에 반하는 일체의 결과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은 이날 논평을 내고 “정의롭고 완전한 해결의 길로 나아가던 제주4·3이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며 “제주4·3의 시계를 되돌리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제주를 찾아 수차례 4‧3의 완전한 해결을 통한 희생자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약속했는데, 취임 6개월 만에 입장이 바뀐 것이냐”며 “4·3의 완전한 해결을 가로막는 행위를 중단하고 제주4·3희생자와 유족 그리고 제주도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제주도교육청은 오는 29일 2022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의견 제출에 앞서 제주도민들의 뜻을 모으기 위하여 4·3평화재단, 4·3유족회, 교원단체, 역사교사모임 등을 대상으로 의견수렴에 나서기로 했다. 도교육청은 도민들의 의견을 포함해 각계의 의견수렴 결과를 토대로 제주4·3의 교과서 기술에 대한 입장을 교육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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