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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지만 지지 않았다"… 목숨 걸고 '시위 연대' 뜻 밝힌 이란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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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이란과 잉글랜드 경기가 열린 도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이란 국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지만 이란 선수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굳은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고 몇몇은 고개를 떨궜다. 통상 국제 경기에서 선수들이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국가를 따라 부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란 축구 대표팀은 침묵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메시지는 명확했다. “이란 반(反)정부 시위와 연대한다”는 것. 선수들은 이날 두 골을 넣었지만 별도의 세리머니도 하지 않았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은 이란 선수들의 돌발행동에 환호와 우려를 동시에 보냈다. “더 과감하고 명확한 연대 의사를 밝혔어야 했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다수는 용기 있는 행동을 높게 평가했다. 안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반정부 시위에 힘을 실어 귀국 후 불이익이나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탓이다. 이란의 권위주의적인 신정체제 분위기를 감안하면, 말 그대로 ‘목숨 걸고’ 반기를 들었다는 얘기다.
관중석에도 지지 행렬이 이어졌다. 응원석 곳곳에서는 관중들이 ‘여성, 생명, 자유’라고 적힌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며 반정부 시위에 연대의 뜻을 표했다. 페르시아어로 ‘자유’를 뜻하는 ‘아자디’라는 함성도 울려 퍼졌다. 이란 국가가 나올 때는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항의했고, 1979년 이란 혁명 이전 시절 국가를 부르는 모습도 포착됐다.
지난 9월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도덕경찰에 끌려갔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22세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를 기려 잉글랜드와의 경기 전반 22분에는 일부 팬들이 ‘아미니’ 이름을 연호했다. 영국 BBC방송은 “축구 경기, 그 이상이었다”고 평가했고,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는 “어떤 국제 경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경기였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란 국영TV는 선수의 얼굴을 비추는 대신 경기장 전경 화면으로 돌렸고, 결국 경기 생중계를 중단했다. 현지 매체들은 “기술적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의도적으로 방송을 멈췄다고 추측했다.
이란 선수들의 기개가 돋보였지만, 경기 상대였던 잉글랜드 대표팀을 향한 실망 여론은 거세지고 있다. 당초 영국,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7개 팀은 무지개색으로 채워진 하트에 숫자 ‘1’이 적힌 ‘원 러브(One Love)’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성소수자 차별 등 각종 인권 논란이 불거진 카타르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전날 국제축구연맹(FIFA)이 "완장 착용 시 옐로카드 부과 등 제재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21일 이란과의 경기에 앞서 '무릎 꿇기' 퍼포먼스로 인종 차별 문제에 항의했지만, 완장을 포기했다는 결과가 더 크게 부각되면서 서구 언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미국 일간 USA투데이는 “이란 선수들은 경찰이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을 체포하고 사살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항의를) 강행한 반면 유럽 팀은 기회를 빼앗기는 점을 두려워하며 물러섰다”고 꼬집었다. USA투데이의 스포츠 플랫폼 포더윈(FTW)도 “인권 옹호가 축구 경기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진정한 수치이자 엄청난 실망”이라고 꼬집었다.
영국 텔레그래프 역시 자국 선수들을 ‘비겁(cowardice)하다’며 “영국은 위험을 감수하는 데 실패했다. 이란 선수들에 비하면 수치스러운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이란 선수들은 각종 후과를 감수하고 ‘자유와 인권을 지지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보낸 반면, 영국은 FIFA라는 권력에 순응했다는 비판인 셈이다. 이날 이란이 전투(경기)에서 잉글랜드에 2-6으로 대패했지만, 전쟁(신념과 용기)에서는 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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