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실패가 나를 기다릴지라도

더 많은 실패가 나를 기다릴지라도

입력
2022.11.19 00:00
22면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7일 서울 서초고 반포고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이 지인의 위로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 달에 한두 번은 고등학교로 강연을 하러 떠나고는 한다. 지금까지 꽤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해 왔는데, 그중 내 이야기에 가장 집중하고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진 분들은 언제나 고등학생들이었다.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으로 가득 찬 10대의 절정에서만 보일 수 있는 그 찬란한 활기를 느끼고 있자면, 정말 내가 이렇게 과분한 대우를 받아도 되는가 싶었다. 심지어는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는데 내가 강연료까지 받아도 되나 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강연이 끝나고 여러 질문을 받다 보면, 마음이 붕 뜨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학생들도 수많은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 앞에 너무나 많은 미래의 경로가 기다리고 있기에,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알기 힘든 학생들이 막막함과 불안을 토로했다. 학생들은 나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여러분, 훨씬 더 큰 꿈을 꾸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들은 내 삶이 철저한 경로를 밟아왔을 거라고 믿었다.

그럴 때마다 내 삶이 얼마나 무계획했으며 얼마나 많은 충동으로 지금의 내가 빚어졌는지 이야기했다. 20대 중반까지는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을지 전혀 몰랐다. 수능을 치고 나선, 심리학이 왠지 이름에 근본이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20대 초반에는 전공을 살려서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전공 학점을 채우려고 생물심리학 과목을 들었는데 이게 대단히 재미있었다. 자연과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물학을 복수전공하려 했는데 실험이 너무 나와 맞지 않아서 포기했다. 졸업하고 나서 6개월간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다가, 프로그래밍 학원에서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컴퓨터 앞에서 하는 일이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술로 돈을 몇 푼 벌기도 했지만, 성공적이진 않았다.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6세에 병무청에서 날아온 영장이었다. 보통 병무청 영장을 받은 사람들은 이상한 일을 한다. 그래서 공모전에 단편소설을 써서 냈고, 그것이 당선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이제 전업작가로 지낸다. 내 삶의 수많은 사건들처럼 이것 또한 극도로 충동적이었다. 꽤 오랜 시간 나는 앞서 했던 모든 좌충우돌을 완전한 시간낭비로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심리학자도 뇌과학자도 프로그래머도 되지 못했으나, 잠시나마 그 목표를 좇으면서 했던 공부가, 여러 장면들을 겪으면서 새겨진 기억이 내 글의 양분이 되었다. 예를 들면 나는 내 글에 효과적으로 프로그래머가 하는 일을 그려낼 수 있었다.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 아니었으면 불가능했겠지.

실패는 고통스럽지만, 그 경험이 삶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내 인생에 정말로 시간을 순전히 낭비했던 순간은, 실패할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6개월의 히키코모리 시절뿐이었다.

2022년 11월 17일에 큰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 중에도 마음이 안 좋은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고작해야 10년 정도 더 살았을 뿐이지만, 그들에게 내가 배웠던 사실을 전달하고 싶다. 기나긴 삶에서, 앞으로도 많은 실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지만, 그 실패가 단지 순전한 고통만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살아갈 수 있음을.


심너울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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