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변호사 3만 명 시대라지만 수임료 때문에 억울한 시민의 ‘나홀로 소송’이 전체 민사사건의 70%다. 11년 로펌 경험을 쉽게 풀어내 일반 시민이 편하게 법원 문턱을 넘는 방법과 약자를 향한 법의 따뜻한 측면을 소개한다.
2015년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혼사건의 공개변론을 열고, 변론의 전 과정을 생중계했다. '혼인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의견을 수렴하기 위함이었다. 일찍부터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입장('유책주의')이었다. 그러나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하면서 '혼인이 이미 파탄되었다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파탄주의')에 힘이 실렸고, 사회적 논란이 계속됐다. 대법원은 판례변경을 검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전원합의체는 찬반의견 7:6으로 팽팽하게 갈렸고, 대법관 1명 차이로 기존 입장인 '유책주의'를 재확인했다.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할 충분한 입법적 조치가 없는 현 상태에서 파탄주의를 도입하면, 유책배우자의 행복을 위해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희생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간통죄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대책 없이 파탄주의만 도입하면 법이 금지하는 중혼(重婚)을 결과적으로 인정할 위험도 있다고 보았다. 다만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사유를 확대했고, 최근 2022년 6월에도 예외 사유를 보다 구체화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1) 상대방도 '혼인계속의사'가 없음에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으로 표면적으로 이혼에 불응하는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하던 것을, (2) '유책성이 상쇄'되는 사정이 있거나, 시간이 흘러 '유책성이 희석'되어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진 경우에도 예외를 인정하고, (3) 상대방에게 '혼인계속의사'가 있는지를 말뿐만 아니라 태도를 종합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사례로 생각해보자. 희진(39)씨와 영철(39)씨는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했고, 슬하에 아들 하준(8)군을 두고 있다. 결혼 후 둘은 크고 작은 갈등을 겪다가 결국 영철씨가 5년 전 집을 나가 희진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이 영철씨에게 있다고 보았고 이혼청구를 기각했다. 영철씨는 3년 후 다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영철씨는 집을 나간 후에도 아파트 담보대출금을 계속 변제했고, 양육비도 매달 지급했다. 희진씨는 소송 중에 '이혼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나, 법원이 권유하는 부부상담에 응하지 않았고, 대화와 소통을 일체 거부하며 오로지 영철씨에게만 모든 잘못이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영철씨의 전면적인 양보만을 요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철씨의 이혼 청구는 인용될 수 있을까?
영철씨는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를 했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희진씨는 주관적으로는 혼인계속의사가 있다고 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악화된 혼인관계를 회복하여 원만한 공동생활을 영위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영철씨의 이혼청구가 인용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희진씨가 경제적·사회적으로 매우 취약하여 보호의 필요성이 크거나, 이혼 후 자신과 미성년 자녀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혼을 거절한 것이라면,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인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끝으로, 혼인이 파탄되고 이혼청구가 인정되지 않은 유책배우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법원은 "우리나라는 협의이혼제도가 있으므로, 유책배우자도 진솔한 마음과 충분한 보상으로 상대방을 설득함으로써 이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협의가 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에 대한 보호와 배려를 지속하면서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소송을 제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헌법 36조 1항). 이혼 관련 법 개정이나 현저한 사회·경제적 변화가 없는 한 '유책주의'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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