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서걱거리는 느낌

입력
2022.11.16 21:00
수정
2022.11.16 22:03
25면

비비언 고닉 지음,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외로움에서는 서걱거리는 느낌이 난다."

이 문장을 읽던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산책 중이었다. 메모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바닷가 벤치에 앉은 채로 나는 이 문장을 여러 번 중얼거린다.

외로움, 서걱거리는 느낌.

아침마다 혼자 바닷가를 산책하는 내 모습을 비비언 고닉이 오래 지켜본 듯한 착각에 빠진다.

뉴욕 거리를 산책하며 마주치는 사람들을 관찰한 고닉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고 생각한다. 비비언 고닉은 구경한다. 모두가 각자 인생에서 주연을 맡아 펼치는 열띤 공연을 가급적 오래 공들여 구경한다. 나는 이 책을 그 공연에 대한 고닉의 리뷰 또는 해설로 읽는다.

이 책에 수록된 7편의 에세이는 비비언 고닉이 관찰한 동네 사람들,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던 20대 시절의 연인과 친구들, 교류하고 있는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게 이 책은 고닉 자신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고닉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고 있다. 회고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비비언 고닉은 타인에 대한 예리하고 따뜻한 관찰과 자기 내면을 향한 집요한 성찰을 무기로 글을 쓴다.

이 책에 앞서 엄마와의 애증을 고백한 '사나운 애착'으로 미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는 고닉이 '형태를 갖춘 문장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며 읽고, '의미가 잘 드러나게 소통하는 것'을 즐기며 쓰고 있는 걸 본다. 이를테면, 그녀의 이런 문장이 그걸 증명한다.

"나는 그 주제에 대해 명료한 글을 써내면서 구원받지는 않더라도 새로워진다고 느꼈다."

구원. 나는 서걱거리는 중얼거림을 멈추고 '구원'이라고 발음해 본다. 고닉이 글을 쓰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사실은 구원이었구나. 누구의 인생인들 구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지만, 나는 우선 편리한 대로 고닉의 정체성부터 상기한다. 이민자 가정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도시 하층민으로 성장한 여성. 이민자, 유대인, 하층민, 여성. 나는 고닉이 이 네 가지 정체성을 고집스럽게 글쓰기로 끌고 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읽는다. 아니, 본다.

"날마다 노력하는 일은 내게 일종의 연결이 되었다. 연결되는 감각이란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강해진 나는 내가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독립적인 사람이 되자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생각을 할 때 나는 덜 외로워졌다."(p.59)

그녀가 당도하는 지점은 결국 외로움.

서걱거리는 느낌.

고닉은 스스로 '외로움에서 나 자신을 비틀어 떼어냈던 게 기억난다'고 회고한다. 외로움은 고닉을 겁에 질리게 했다. 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느낌. 고닉이 익힌 훌륭한 작동법은 오직 한 가지. 똑바로 앞을 보고, 입을 다물고, 온전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사랑 때문에 고심한다. 내 단단한 마음을, 그리고 또 다른 인간 존재를 동시에 사랑해 보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한다. 매일의 노력은 여전히 몹시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노력하는 한, 나는 로맨스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로맨스에 저항할 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힘겨운 진실을 꾸준히 바라볼 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진다."(p.61)

매일의 노력으로 일을 하며 로맨스에 저항하는 사람. 힘겨운 진실을 꾸준히 바라보는 사람. 고닉의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보이는 대목이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고닉의 글쓰기는 이런 식이다. 설명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읽는 사람을 순식간에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다. 자, 봐, 난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살고 있어. 온전한 경청자를 만난 고닉은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안심하고 전부 다 토해낸다.

"샬럿이나 마이라, 대니얼과 대화할 때면 서걱거리는 느낌이 씻겨나간다."(p.169)

이 책을 읽는 나는 샬럿이고 마이라고 대니얼이다. 나는 고닉에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며 그녀를 읽는다. 그렇게 그녀의 공연을 지켜본다. 이 글은 고닉의 공연에 대한 힘찬 박수이자 앵콜 요청이 될 것이다.

동네산책

  • 윤소희 대표

동네산책은 전남 목포시 용당동에 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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