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에 깃든 시대와 역사

입력
2022.11.1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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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단추의 날

18세기 프랑스의 단추들. lookandlearn.com

18세기 프랑스의 단추들. lookandlearn.com

단추는 옷에서 떨어지기 전까진 별 존재감이 없지만, 과거에는 위상이 사뭇 달랐다. 일일이 손으로 깎아 만들어야 하는 수공예품이었고, 짐승의 뿔이나 청동, 보석 등 소재도 비쌌다.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니어서, 서민들은 구입할 여유도 없었지만 굳이 단추 옷을 만들어 입을 이유도 없었다. 한마디로 단추는 값진 패션 아이템이자 부와 신분의 상징이어서,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치렁치렁한 토가 주름을 고정하기 위해 (귀)금속 소재의 다소 무거운 단추를 추처럼, 혹은 비상금으로 매달고 다니곤 했다. 단추 하나를 떼어 빚을 갚았다는 기록도 있고, 지금도 이탈리아어 ‘단추의 방(stanze dei bottony)’은 유력자들이 모이는 공간을 가리키는 관용어로 쓰인다. 남성복과 달리 여성복 단추가 왼쪽에 달린 까닭도 귀족 여성들의 단추를 시녀들이 여며 주던 관습의 흔적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단추는 약 5000년 전 모헨조다로유적(현 파키스탄 인근)에서 발견된 것이다. 굽은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진 그 단추는 고리에 거는 형태이고, 실용 목적이 아닌 장식용이었다. 단춧구멍에 끼우는 형태의 단추는 13세기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져 유럽으로 확산됐고, 중세시대 단추 길드가 여럿 생겨났다. 단추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것은 자본주의가 무르익던 19세기 초부터였다.

단추는 시대에 따라 형태와 소재, 용도와 상징적 의미가 달랐다. 2017년 국립중앙박물관은 단추를 통해 유럽의 역사와 시대를 읽는 특별전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 특별전을 연 바 있다.

단추의 가치나 위상이 예전 같진 않지만, 그 때문에 더욱 단추의 맵시와 기품이야말로 브랜드 가치와 철학을 가늠케 하는 기준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각양각색 단추를 수집하며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누린다. 1930년대 미국에서 발족된 미국단추협회 회원들이 대표적이다. 11월 16일은 그들이 단추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정한 기념일 ‘단추의 날’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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