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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글쓰기로 말할 수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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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5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임솔아의 소설들은 자전적으로 읽히는 특징이 있다. 삼인칭으로 쓰여도 마찬가지다. 서술자를 관찰자로 두는 법이 없다. 이전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보다 두 번째 소설집에서 그 점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작가로 사는 인물이 여러 소설에 노출되기도 하지만 꼭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임솔아는 어떤 사안에 연루된 자로서 당사자 의식을 포기하지 않는 서술자들을 고집한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어느새 소설의 인물들과 작가를 동일시하며 읽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싶어 느낌을 가만히 둔다.
시처럼 발화의 주체가 작가와 가까워 보일수록 독서는 진정성으로 보답한다. 첫 소설집에서 임솔아는 '무기력하다는 생각조차 무력감 때문에 할 수 없었다'('다시 하자고')는 세상에 질린 어린 인물들과 함께 성장했다. 섣부른 위안마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리고 또 무슨 일들이 있었나? 문단 내 성폭력과 미투 사건들, 문학계 권력 남용에 대한 저항 등을 가로지르는 가파른 시간들이 놓여 있다. 그건 아무래도 ‘안전한 지대’라고 믿었던 작가 생활에 사고처럼 맞닥뜨린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의 인물들은 폭풍이 지나고 난 자리에 잔해를 밟고 서 있다. 임솔아는 그 내상의 뒷이야기를 정직하게 직시한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의 소설들은 작가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쓰인 것 같고, 그 혼란의 세부가 서사가 되어서 독자도 온전히 그 진동을 체감하게 한다. 혼란은 혼란대로 풀어놓고 생존자의 시간을 사는 인물들을 그려낸다. 그래서 일인칭일 뿐 아니라 홀로 자기를 대면하는 인물들이 서사의 전면에 나서 있다. 그건 마치 뿌리를 옮겨서 60년을 고독한 시간 속에서 살다가 간 사바나의 초상이나 목숨 내놓고 바다를 건너는 노루의 운명을 연상시킨다.
일인칭의 글쓰기가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은 이런 것이다. 내가 맺은 관계들이 족쇄가 되지 않으려면 개인의 실존은 어떠해야 할까? 나도 너도 훼손되지 않고 살아가려면? 그래서 선한 관계들이 지속되려면? 임솔아는 자기 자신인 것과 아닌 것을 분리해내는 자기 구현의 글쓰기를 감행한다. 그래서 자신의 글쓰기가 온전히 내게서 다시 시작될 수 있는지 써내려간다. ‘얼음의 언저리를 걷는’ 것처럼 글쓰기가 끝날 수도 있다는 파국의 예감까지 안고 있다. 이 소설집의 독후가 놀라운 건 일인칭 글쓰기가 어느덧 고유한 형식으로 거듭나면서 일인칭도 아닌, 온전히 새로운 문법을 가진 소설로 읽히는 순간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그건 순전히 일인칭 글쓰기의 치열성이 이룬 성취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는 한 작가의 성장과 소설의 갱신을 아주 조밀하게 겹쳐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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