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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이클 의류'라던 그 옷, 실제 재활용 섬유 비율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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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워싱탐정]<12>리사이클 의류
지구는 병들어 가는데, 주변에는 친환경이 넘칩니다. 이 제품도, 이 기업도, 이 서비스도 친환경이라고 홍보를 하지요. 한국일보는 우리 주변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추적하고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촉구하는 시리즈를 4주에 한번 연재합니다.
페트병에서 섬유를 뽑아 만든 '재활용옷'을 구입한 소비자라면, 환경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중첩적인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선, 옷의 일부에만 재생(재활용)섬유를 사용하고도 이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아 100% 재생섬유로 오해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의류업계가 페트병 재활용을 선점하면서 식품업계는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의 재활용에 뒤처졌다. 페트병은 페트병으로 다시 탄생하는 것이 훨씬 친환경적인데도 국내에선 아직 상용화가 안 되고 있다. 옷에서는 다시 재활용 원료를 뽑아낼 수 없어서, 섬유에 재활용 원료가 쓰이면 한 번 사용 후 결국 버려진다.
'리사이클옷(재생섬유 의류)'이 가진 그린워싱 논란은 무조건적인 재활용이 아닌, 가장 적합한 재활용의 방식을 묻는다.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를 사용하여 친환경 옷을 만듭니다."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국내 패션 브랜드 에잇세컨즈(삼성물산)의 '지속가능성 라벨(Sustainability label)' 제품군 설명이다. 페트병을 재활용한 섬유를 사용하는데, 투명 페트병을 녹여서 펠릿(알갱이)으로 만든 뒤 길게 늘여 실로 뽑은 것이라 생각하면 쉽다.
그러나 제품 설명만 봐서는 이 옷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재활용 섬유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제품 소재를 기록한 '상품정보제공고시'엔 합성섬유의 비율만 건조하게 적혀 있을 뿐이다. "겉감: 나일론 51%, 폴리에스터 49%, 안감: 폴리에스터 100%, 충전재: 폴리에스터 100%" 등이다. 이 많은 합성섬유 중 무엇이 재활용 소재라는 것인지, 표시가 돼 있지 않다.
그나마 공식 홈페이지에는 '재활용 소재'에 대한 그림 설명이 있다. '폐 페트병을 가공해 폴리에스터 섬유 원사를 만들어 스웨터와 충전재로 쓴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스웨터와 충전재는 모두 100% 재활용 소재라는 것인지, 그 외 겉감과 안감은 재활용 소재가 아닌 것인지 의문투성이다. 공식 홈페이지가 아닌 온라인 쇼핑몰이나 오프라인 매장에는 이런 설명도 없다.
삼성물산 외에 신세계인터내셔널·이랜드그룹·신성통상의 재생섬유 의류들을 살펴봐도, 재활용 섬유 비율을 적어둔 곳은 없었다.
이랜드그룹의 스파오는 온라인에서 제품명 앞에 ‘리사이클’을 적은 게 전부였다. 어떤 방식으로 만든 재활용 섬유를 어디에, 얼마나 썼다는 것인지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신세계인터내셔널의 생활용품 브랜드 ‘자주’도 삼성물산의 에잇세컨즈처럼 공식 홈페이지에 그림 설명을 첨부했지만, 역시 재활용 섬유의 명확한 비율은 표기하지 않았다. "폐기된 페트병을 재활용하여 생산한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충전재"라고 적는 식이다.
공개된 자료가 없으니 각 업체에 재활용 섬유가 어디에, 어떤 비율로 쓰였는지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에잇세컨즈 제품에 대한 한국일보 질의에 삼성물산은 "패딩은 충전재에 한해서만 70~100%를 재활용 소재로 채운다"고 했다. 충전재는 경우에 따라 100%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긴 하지만, 안감과 겉감 등은 재활용 소재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세계인터내셔널은 생활용품 브랜드 ‘자주’에서 패딩과 덤블보아 제품에 재활용 섬유를 썼다고 돼 있다. 덤블보아는 플리스와 유사한 외투다.
신세계도 "패딩은 충전재에만 재활용 소재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겉감이나 안감은 일반 합성섬유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덤블보아는 외투의 곱슬거리는 부분에만 재활용 소재를 썼고, 주머니나 안감 등엔 일반 합성섬유를 썼다. 다만 신세계 관계자는 "충전재와 덤블보아 부분은 100% 재활용 섬유로만 만들었다"고 했다.
신성통상은 탑텐의 ‘에코 플러피플리스 하이넥 집업’ 제품에 재활용 소재를 썼다고 홍보하고 있다. 신성통상은 한국일보 질의에, "재활용 섬유 비율은 25%"라고 답했다. 75%는 재활용이 아닌 일반 섬유다.
이랜드그룹의 스파오도 ‘리사이클 루즈핏 퍼플리스 포켓 집업’ 제품에 일반 섬유를 섞어 썼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랜드는 기자의 문의에도 재활용 섬유와 일반 섬유의 구체적인 비율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정보는 일반 소비자로서 알기 어렵다. 상품정보제공고시나 혼용률 태그에 소재를 명확히 구분해서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초록색 태그를 붙이거나(오프라인 매장), 제품명 앞에 'RECYCLE(재활용)'이라는 안내 문구(온라인 홈페이지)를 적는 정도다.
그러면서도 친환경을 적극 홍보했다. 에잇세컨즈는 온라인에서 "지구를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 "착한 소비를 위해 초록색 태그를 찾아주세요"라고, 탑텐은 제품 태그에 "버려진 1,000만 개의 페트병이 따뜻한 플리스 제품으로 재탄생되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작은 움직임"이라고 써뒀다.
삼성물산은 충전재의 재활용섬유 사용 비율(70~100%)을 공개하지 않았어도, 설명은 충분했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온라인 공식 홈페이지로는 자세히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오프라인에서는 초록색 태그로 친환경 제품을 인지시키고 있다"며 "주 소비층인 2030세대는 온라인으로 충분히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신세계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오프라인 매장 태그에는 공간이 협소해 충분한 설명을 적기 어려웠다"고 했고, 신성통상은 "친환경 제품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랜드그룹은 "제품군이 많지 않다보니 명확한 지침이 없었다"며 "혼용률 공개를 위한 지침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해외에서는 정부 당국이 나서 모호한 표기 문제를 제재하고 있다. 지난 7월 영국의 경쟁시장당국(CMA)은 의류 브랜드 아소스(ASOS), 부후(Boohoo), 조지(George)의 친환경 광고가 그린워싱일 가능성이 있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엔 '재활용 섬유를 썼다고 표기한 제품이 실제 함유량은 20%도 채 되지 않는 경우' 등이 포함됐다.
이는 영국 CMA가 지난해 마련한 친환경 주장 지침에 따른 것이다. 영국 CMA는 친환경 주장을 할 경우 따라야 할 6가지 사항을 지침으로 마련했다. 설명이 명확하고 모호하지 않아야 하고, 중요한 정보를 생략하거나 숨기면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내에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률(표시광고법·환경산업기술법)이 있지만, 요가매트·주방용품 등 일부 품목에만 적용되고 있다.
2019년 노르웨이의 소비자위원회(The Consumer Authority)도 의류 업체 H&M에 재활용 섬유의 비율과 정보를 정확히 명시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현재 H&M은 이를 명확히 구분하여 표기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상품 태그에 '겉감 상부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 겉감 53% 재활용 폴리에스터, 충전재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라고 적는다. 온라인에서도 '겉감: 재활용 폴리에스터 47%, 안감: 재활용 폴리에스터 100%' 등으로 재활용 섬유 사용처와 비율을 명시하고 있다.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재활용 섬유 비율은 해당 제품이 얼마나 친환경인지 평가할 중요한 정보”라며 “정보 공개를 위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으로 페트병 재활용품을 의류 소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란도 크다. 자원 순환 고리를 끊고, 막대한 의류 폐기물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원료가 재활용을 통해 끊임없이 순환하려면 A제품을 A로 만드는 것이 제일 좋다. 투명 페트병을 다시 페트병으로 만들고, 이를 또다시 페트병으로 재활용하는 식이다. 그러나 페트병으로 의류를 만들면 순환의 고리가 끊긴다. 의류의 합성 섬유를 재활용하는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여서, 한 번 의류로 만들면 다시 재활용할 수 없다. 즉 페트병이 의류가 될 순 있지만, 의류는 페트병이 될 수 없어서 결국 버려진다.
이 탓에 유럽에서는 식품업계가 '타 업계의 재활용 페트 원료 사용을 제한하라'는 입장문을 내기도 한다. 의류 산업이 친환경 홍보를 하기 위해 고품질의 재활용 페트 원료를 가져가면서, 식품 산업의 재활용 원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재활용 섬유는 식품 용기 이상으로 깨끗하고 투명한 폐페트병이 필요하다.
지난 5월 유럽 과일주스협회(AUJN), 먹는물협회(NMWE), 탄산음료협회(UNESDA)는 입장문을 내어 "점점 더 많은 페트병이 섬유·자동차 업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쓰이지만, 이는 병이 더 저품질로 재활용(다운사이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EU가 '닫힌 고리 재활용(Closed Loop Recycle·원료를 같은 제품으로만 재활용하는 것)'을 우선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국내 페트병 재활용시장에서도 약 57%가량이 섬유에 쓰인다. 나머지는 얇은 판(시트·18%)을 만들거나 수출·연구 등(25%)에 쓰인다. 병을 병으로 재활용하는 ‘보틀 투 보틀’ 재활용은 아직 상용화한 곳이 없다. 국내 연간 페트병 사용량은 33억 개이고, 연간 재생 원료 생산량은 약 20만2,000톤인데 말이다.
올해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환경부가 제도를 바꿔 재활용 용기를 식품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나, 품질 좋은 재활용품을 수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식약처 고시(기구 및 용기·포장의 기준 및 규격) 탓에, 물리적 재활용을 한 플라스틱은 식품에 닿지 않는 면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제주개발공사(제주 삼다수)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재활용 원료를 두고 섬유업계와 대립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판단한다"면서도 "재활용 페트병을 양산하기에는 재활용 페트 원료 물량이 너무 적어서 수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재활용 섬유는 새 섬유를 더 만들지 않고 폐페트병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순환의 고리가 끊긴다는 한계가 명확하다"며 "의류업계는 재생섬유를 강조하기보단 의류 폐기물을 줄이거나 재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고, 페트병은 페트병으로 재활용해 순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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