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당신이 아는 불평등은 잘못됐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자기주장만 펼치는 시대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찰력’(인사이트)이 아닌 ‘기존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아웃사이트)이 필요합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격주로 여러 현안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고정관념을 넘은 새로운 관점의 글쓰기에 나섭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불평등을 줄여 경제성장을 제고하려는 정책패키지였다.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최저임금을 16.4%와 10.9% 인상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특히 2018년의 경우, 고용증가율이 급감했다. 지난 30년간 경제위기 없던 해의 연평균 일자리 증가가 약 40만 명이었다. 2018년 일자리 증가폭은 9.7만 명에 불과했다. 일자리 증가가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하나의 정책이 실현되는 과정은 3단계를 거친다. 원인 분석, 정책 처방, 정치적 집행이다. 예컨대 불평등 해소 정책의 경우 ①불평등에 대한 원인 분석 → ②불평등에 대한 정책 처방 → ③불평등에 대한 정치적 집행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원인 분석’이다. 그래야 다음 단계가 제대로 작동한다.
한국경제 불평등은 왜 생겨난 것일까?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우리는 한국경제 불평등에 관한 ‘5가지 통념’을 알고 있다. 5가지 통념이 무엇인지, 정말 타당한지부터 살펴보자.
한국경제 불평등에 관한 5가지 통념
첫째, 불평등 확대 시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불평등이 확대됐다고 알고 있다. 경제학자들을 포함한 경제 전문가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주장했다. 둘째, 불평등 발생 원인이다. 소위 ‘3대 적폐론’이다. 재벌 편향,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남용 정책이다. 이 경우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은 반대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된다. 재벌을 규제하고 국가 개입을 대폭 강화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하면 된다.
셋째, 정치권 책임론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하고 확대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잘못해서 불평등이 확대됐다고 본다. 특히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수용한 김대중 정부가 불평등 확대의 ‘첫 단추’를 끼웠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불평등을 키웠다고 본다. 이런 인식은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적 시민사회에 두텁게 펴져 있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넷째,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다. 진보성향 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의 대부분이 경제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거꾸로, 불평등을 줄이면 그 자체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근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다. 다른 나라 사례에 근거한 다른 나라 보고서다. 다섯째, 국내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됐다고 본다. 특히 정부 정책의 효과가 컸다고 여긴다.
우리는 이를 ‘한국경제 불평등에 관한 5가지 통념’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정리해 보면 ①시점 ②원인 ③정치권 책임론 ④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 ⑤국내적 분석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 불평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5가지 통념에 대해서 몇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해 타당하지 않다. ‘불평등에 관한 원인 분석’부터 틀렸다. 원인 분석이 틀리니 정책 처방도 틀리고, 정치적 집행도 틀릴 수밖에 없었다.
경제 불평등, '97년 외환위기' 아닌 ‘94년부터’ 시작
'그림1'은 한국의 임금 불평등(임금 지니계수) 추이다. 고용노동부가 1980년부터 최근까지 동일한 방법으로 만들고 있는 데이터다. 시계열의 안정성이 높은 자료다. 다만, 이 자료는 ‘임금’ 불평등만을 보여준다. '그림1'은 3가지 측면에서 놀랍다. 첫째, 임금불평등은 ‘1994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가 아니다.
둘째, 한평생 민주화운동을 했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불평등이 증가한다. 재벌, 신자유주의, 비정규직의 ‘3대 적폐론’이 정말 사실이라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실제로는 ‘적폐정권’이었던 것인가? 이 기간에는 금융실명제, 고용보험의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도입 등 개혁정책을 많이 했다. 그런데 왜 불평등이 증가한 것일까?
세 번째로 놀라운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던 기간에는 불평등이 줄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에 취임한다. 그해부터 약 5년간 불평등은 소폭 줄어든다. 불평등은 2014년에 다시 증가하고, 2015년을 최정점으로 최근까지 줄고 있다.
종합해 보면, ‘진보 정부’가 집권할 때 불평등이 증가됐다. ‘보수 정부’가 집권할 때 불평등은 줄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한국경제 불평등에 관한 5가지 통념에 의하면,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또 다른 상식과 충돌한다.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시점은 1997년 11월이었다. 한국의 많은 진보경제학자들이 ‘1997년 이후부터’ 불평등이 증가했다고 주장한 이유다. 그런데, 왜 한국경제 불평등은 ‘1994년 이후부터’ 증가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이유는 1992년 8월 24일 체결된 한중수교 때문이다.
‘수출 잘되면’ 불평등이 커지고, ‘수출 작살나면’ 불평등이 줄어
중국의 개혁개방 역사에서 수출 중심 공업화 노선이 전면화되는 분기점은 1992년이다. 1992년 1, 2월 기간에 있었던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가 분기점이다. 중국식 개혁개방의 상징어가 된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용어의 등장도 1992년에 있었던 제14차 당대회부터다.
1992년 8월 한중수교 체결은 왜 한국경제 불평등을 확대했는가? 크게 세 가지 경로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한중수교 이후 한국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한다. 특히 저숙련-노동집약적-수출-제조업 분야가 그랬다. 1992년을 분기점으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해외직접투자(FDI) 투자액이 급증한다. 한국은 1987~1991년 기간 동안 노동자 대투쟁으로 인해 임금이 급등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국제적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게 됐다. '좋은 불평등'이라는 책에서는 “한국의 자본가 계급이 중국 공산주의로 피난을 갔다. 저임금을 찾아서”라고 표현했다.
둘째, 한국에 공장이 남아 있는 경우, 국제적인 ‘가성비’(가격대비성능) 경쟁에서 중국에 밀리게 됐다. 이때 몰락하는 산업이 부산의 신발산업과 대구의 섬유산업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이미 41%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셋째, 제조업 일자리는 30%에서 17%로 줄게 된다. 사라진 일자리는 ‘제조업 하단’이었지만, 전체 노동시장에서는 ‘중간층 일자리’였다. ‘중간층이 얇아져서’ 발생한 불평등 확대였다.
2001년 12월 11일,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다. 이후 중국은 경제성장률 약 12%, 연평균 수출증가율 약 25%의 고도성장을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시기에 한국의 대중국 수출증가율이 무려 30%였다. ‘대중국 수출대박’은 한국 불평등을 증가시킨다. 한국에서 수출=제조업=대기업=상층 20%는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수교 체결 이후, 한국경제는 ‘수출이 잘되면’ 불평등이 커지고, ‘수출이 작살나면’ 불평등이 줄어드는 일이 반복된다. 쉽게 말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서 수출이 잘되면 불평등이 커지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서 수출이 어려워지면 불평등이 줄어드는 구조였다.
'그림2'는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과 임금 지니계수의 상관관계다. 상관계수는 무려 0.832다. 한국경제 불평등은 ‘중국발’ 불평등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수출확대형’ 불평등이었다. 경제학에서 불평등은 ‘하층소득 대비 상층소득의 격차’다. 한국경제 불평등은 ‘상층’은 수출과 연동된 좋은 불평등 성격이 강했다. ‘하층’은 고령화와 연동된 나쁜 불평등 성격이 강했다.
한국경제에서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불평등 문제를 경제성장, 경쟁력, 수출, 계층사다리, 사회통합 문제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