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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표정

입력
2022.11.11 04:30
25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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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쇼베 동굴벽화에는 다양한 동물의 표정부터 앞뒤 동물들의 원근감, 달리는 짐승의 다리와 뿔 등을 겹쳐 그리는 등 생생한 움직임이 묘사되어 있다. 책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에는 이런 뛰어난 그림 실력에도 사람 얼굴을 그리지 않은 이유를 인간이 오랫동안 얼굴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적 의미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2,000년 전 알렉산드리아 시대 이후에야 인간의 '얼굴 의식'이 시작한 것으로 봤다. 인류의 오랜 외모 중시, 심지어 '사과 같은 내 얼굴'을 부르다가 '호박 같은 내 얼굴'을 부를 때 아이들의 극명한 표정 대비를 생각해 보면 많이 늦은 '얼굴 의식'에 대한 해석은 아주 뜻밖이다.

한국어에도 얼굴과 관련된 단어들이 여럿 있다. '세모눈', '납작코'처럼 이목구비 생김새 그대로보다는 형태가 유사한 사물을 비유하는 단어들이 많이 발견된다. '개구리눈, 독사눈, 족제비눈', '말코, 사자코', '대구입, 메기입'과 같이 동물에 비유하기도 하고, '머루눈, 좁쌀눈', '딸기코, 유자코'처럼 식물에 비유하며, '갈고리눈, 밥풀눈, 우물눈', '들창코, 방석코, 주머니코', '쪽박귀, 칼귀'와 같이 사물의 특징을 따오기도 한다. 사람의 특이한 외모를 집어내는 단어들이기에 내 얼굴에 붙이고 싶지 않은 말이 대다수이다.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얼굴 근육은 사회적 동물인 영장류가 가진 속성이다. 마흔이 넘어 책임져야 할 얼굴은 타고난 생김새 그대로가 아닌,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에 대해, 상대방에 대해 수용하고 표현하는 동안의 근육 움직임에 대한 결과물일 것이다.

최혜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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