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참사 때 희생자 명단 공개...핼러윈 참사 안하나? 못하나?

입력
2022.11.09 15:10
수정
2022.11.0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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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 공개에 "영정 없는 애도 안돼" vs "패륜행위" 공방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때 명단 실시간 공개
참사 당사자들 "정치 공방 말고 유가족에게 물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름‧영정 공개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 전날까지 "(관련 논의는) 전혀 이뤄진 바 없다"(오영환 원내대변인)며 당 차원에서 선을 그었지만, 하루 만에 이 대표가 '희생자 공개론'에 힘을 실으며 희생자 공개를 반대하는 여당과의 설전이 예상된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을 하고 애도를 하느냐"며 "'내 아들의 이름과 얼굴을 가리지 말라'는 오열도 들린다.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부가 희생자들의 이름과 위패, 영정사진 없이 분향소를 차린 것을 짚으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다시 촛불 들고 해야겠느냐. 숨기려고 하지 말라. 숨긴다고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날 희생자 명단 공개에 "부적절한 의견으로 당내에서 논의할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오영환)이란 입장을 보인 것과 사뭇 대조되는 반응이다. 민주당 일부 인사들이 주장한 희생자 공개에 "유가족 슬픔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패륜행위"(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라며 거세게여당과 공방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2017년 제천 화재 때도 사망자 명단 공개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다음 날인 2003년 2월 19일 방송사들은 병원별로 이송된 사망자 명단을 실시간 보도했다. SBS 방송 캡처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다음 날인 2003년 2월 19일 방송사들은 병원별로 이송된 사망자 명단을 실시간 보도했다. SBS 방송 캡처

과거 대형 참사 때는 사상자, 실종자 명단이 공개됐다. 종합일간지, 방송사 참사 보도를 검색하면, 멀게는 292명이 숨진 1993년 10월 서해훼리호 침몰 참사부터 가깝게는 29명이 숨진 2017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까지 희생자 명단이 언론에 보도됐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때는 병원별로 이송된 사망자‧부상자 명단과 이들의 소속 기관이 방송을 통해 실시간 보도됐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때도,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 때도 병원별로 안치된 사망자 이름이 방송을 통해 일일이 호명됐다.

참사 처리 이후엔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가 이어졌다. 서해훼리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전북 부안군 위도면 진리에 위령탑을 세우고 희생자 292명의 이름을 탑에 새겼다. 1995년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희생자 유족들도 역시 위령비에 가족 이름을 새겼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명단은 지금도 4‧16재단 홈페이지에서 소개되고 있다.

물론 이태원 참사가 희생자 명단이 공개된 다른 참사들과 다른 점은 있다. 무엇보다 사망자‧부상자 신원 확인 기간이 짧았다는 점이다. 침몰‧붕괴‧화재 참사는 특성상 희생자 신원 파악에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수십 일이 걸렸고, 이에 따라 실종자 가족들이 희생자 신원 공개를 먼저 요청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의 경우 외국인 희생자까지 이틀 만에 모두 신원이 확인됐다.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인식 변화, 한층 노골화된 약자 혐오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를 고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마련된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은 "(참사)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자협회는 이태원 참사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199개 지회에 공문을 보내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언론이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해 2차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참사 당사자‧희생자 가족들 "정쟁부터 멈춰라"

2005년 4월 28일 대구 상인동 도시가스폭발사고 10주기 추도식에 참여한 유가족들이 희생자 명단이 새겨진 돌판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5년 4월 28일 대구 상인동 도시가스폭발사고 10주기 추도식에 참여한 유가족들이 희생자 명단이 새겨진 돌판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해 기존 대형 참사 당사자들은 여야 정쟁부터 멈추라고 당부했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영정 공개 의사부터 묻는 게 순서라는 말이다. 정성욱 세월호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부장은 "유가족들이 만났을 때 정부 대응의 미비점 등을 함께 논의하고 대처할 수 있는데, 현재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다른 희생자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며 "적어도 희생자 가족, 생존자들은 만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명단 공개 시 희생자 가족들을 향한 2차 가해가 우려되는 점은 있다. 그러나 참사 경험자들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명단 공개를 막거나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기보다 "유가족들의 의사를 묻는 게 먼저"(정성욱)라고 지적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생존자인 이선민씨는 이날 페이스북에 "정부가 희생자 명단을 발표하지 않는 이유를 '2차 가해 우려'라고 했는데 이는 핑계가 되지 않는다"며 "만약 명단이 공개되고 2차 가해가 진행되면 가해자들을 당신들(정부)이 '압색(압수수색)'하면 된다"고 꼬집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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