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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기업들이 IBM 대신 택한 스타트업' 독자 학습하는 AI 만든 이창수 올거나이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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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 계열사를 가진 일본 최대 금융기업 미쓰이 스미토모그룹(SMBC), 시가 총액 43조 원의 미국 대형 보험사 트래블러스, 일본 대형 증권사 노무라증권.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쟁쟁한 외국의 대형 정보기술(IT) 업체들 대신 한국 신생기업(스타트업)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성과를 낸 주인공은 2017년 미국에서 AI 스타트업 올거나이즈를 설립한 이창수(43) 대표다. 심지어 SMBC는 오래 사용한 IBM의 AI를 버리고 올거나이즈를 택했다. IBM은 컴퓨터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된 제품 '개인용 컴퓨터'(PC)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고, AI 슈퍼컴퓨터 '왓슨'을 만든 거대 IT기업이다.
SK케미칼, 현대카드, KB증권, 대우건설 등 국내 대기업들도 이 대표가 개발한 AI 솔루션을 사용한다. 불과 설립 5년 만에 이런 성과를 낸 비결이 무엇일까. 모처럼 방한한 이 대표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이 대표가 개발한 '알리'는 문서 정보를 잘 찾아내는 AI 솔루션이다. 검색창이나 대화창에 친구와 말하듯 대화체로 물으면 AI가 해답을 찾아준다. 예를 들어 '올해 바뀐 정부의 세무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AI가 관련 내용을 순식간에 찾아서 보여준다. "기업에 제일 많은 데이터가 문서 자료죠. 기업이 클수록 사내 문서 자료를 찾는 일이 정말 힘들어요. 제대로 정리가 안 돼 있고 형식도 워드, 액셀, 파워포인트 등 제각각이죠. 일반 검색으로는 제목만 찾아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제목에서 단어가 살짝 바뀌면 찾지 못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개발한 것이 알리다. "옆 동료에게 말 걸듯 대화체로 묻거나 특정 단어를 입력해도 돼요. 예를 들어 '직원 포털'이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고 계속 인트라넷만 떠오르면 '인트라넷에서 노무 조항을 찾아달라'고 말하면 AI가 직원 포털에 있는 문서를 찾아 해당 조항을 보여주죠." 이처럼 수없이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이 알리를 각 기업에 맞는 맞춤형 AI로 발전시킨다.
알리는 IBM 왓슨, 마이크로소프트(MS)의 '루이스' 등 쟁쟁한 AI들과 경쟁한다. 알리가 이들을 누른 비결은 무엇일까.
핵심은 알리의 독자 학습 능력이다. AI는 일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 필요한 데이터를 모아서 가르치는 기계학습(머신 러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알리는 이 과정이 필요 없다. 알리가 필요한 데이터를 스스로 찾아 학습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알리를 기업의 전산 시스템에 연결해 놓으면 스스로 자료를 찾아 학습해요. 알아서 먹고 자라죠. 다른 AI들은 기업이 도입해 활용하려면 훈련 기간이 필요하지만 알리는 이 기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아요. 그만큼 기업들의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죠."
이를 위해 알리 내부에 또 다른 AI가 숨어 있다. "알리의 학습에 필요한 자료를 만드는 또 다른 AI가 내부에 들어 있어요. 즉 데이터를 수집해 분류하는 데이터 라벨링 AI가 내장됐죠."
또 업종별 교본을 만들어 알리를 미리 학습시킨 것도 주효했다. "금융, 제조 등 기업 특성에 맞는 업종별 약어와 전문 용어 등을 알리에 미리 학습시켜요. 경쟁사들은 이런 절차 없이 데이터 학습만 시켜서 AI가 전문 용어와 약어를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죠."
알리의 또 다른 장점은 오차 수정이 빠르고 쉽다. "잘못된 자료가 있으면 AI가 잘못 공부해 잘못된 결과를 보여주죠. 알리는 이를 발견한 사람이 바로 수정해 AI에 반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어요. 경쟁사들은 잘못된 자료를 모아 자료분석팀에 전달해 AI를 다시 3, 4주 동안 훈련시켜야 해요. 이러면 기업이 AI를 가르치다가 시간을 다 보내죠."
IBM, MS 등 경쟁 업체들은 왜 알리처럼 하지 못할까. 이 대표는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경쟁사들은 AI 개발에 필요한 질문 데이터를 우리만큼 많이 갖고 있지 못해요. 우리는 고객사들을 통해 실제 이용자들의 질문 데이터를 많이 확보했어요.” 즉 고객 기업과 소비자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의 양과 질이 다르다는 얘기다.
알리를 이용하는 기업은 전 세계 2,500여 개사에 이른다. 이 중 비용을 내는 기업은 250개사다. "최대 고객은 일본 SMBC입니다. 60개 계열사가 모두 알리를 사용하죠. 미국 트래블러스도 5개 계열사가 쓰고 있어요. 일본 다이치생명도 고객이죠."
일본 노무라증권은 알리를 도입해 직원들의 업무를 편하게 바꿨다. "일본은 정부의 연금 지침이 매년 바뀌어 금융사 직원들도 잘 몰라요. 그래서 매년 관련 내용을 찾느라 직원들이 고생했는데 알리를 도입한 뒤 어려움을 해결했죠."
일본 전역에 1,000개 이상 매장을 운영하는 일본 가구업체 니토리는 아예 직원들이 매장에서 사용하는 전용 스마트폰에 알리를 탑재했다. "니토리는 제품이 너무 많아 직원들도 조립법을 모르는 가구가 많아요. 알리를 도입한 뒤로 직원들은 스마트폰으로 가구 조립법을 찾아 소비자들에게 알려주죠."
미국 트래블러스와 일본 다이치생명은 수많은 문서를 자동으로 분류해 정리하는 일에 알리를 활용한다. "양 사는 보험금 지급에 필요한 의사 소견서, 경찰 보고서 등 산더미 같은 문서들을 매일 이메일로 받아요. 이를 알리가 자동 분류하고 핵심 단어를 추출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죠."
알리는 이용자들이 매달 돈을 내고 클라우드 서비스에 접속해 사용하는 구독형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로 제공된다. 기업이 원하면 내부 전산 시스템에 알리를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구독 서비스 비용은 월 100만 원이 최저입니다. 월 300만 원가량 비용을 내는 기업들이 가장 많죠. 국내외 대기업들은 월 수천만 원씩 비용을 냅니다. 설치형은 데이터 사용량에 따라 비용이 다르죠."
올거나이즈의 지난해 매출은 약 50억 원. 개발비용이 많이 들어 아직 흑자는 아니다. "내후년쯤 흑자 전환을 예상합니다."
투자는 지금까지 국내외 투자사로부터 약 200억 원을 받았다. 일본 SMBC는 고객이었다가 기술력에 반해 전략적 투자사가 됐다. "SMBC는 원래 IBM의 AI 왓슨을 사용하다가 정확성 시험 후 알리로 바꿨어요. SMBC가 1년 6개월 사용한 왓슨은 정확도 시험에서 91.5% 정확도를 보였죠. 반면 알리는 2주 사용 후 정확도가 95%로 나왔어요. 짧은 시간에 왓슨보다 높은 정확도가 나오자 순식간에 해외 금융권에 소문이 났어요. 그동안 금융권에서 IBM 왓슨의 홍보대사처럼 알려진 SMBC가 알리로 바꾸면서 잇따라 해외 금융사들이 고객으로 들어왔죠."
이 대표는 지난 8월 본사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본 도쿄로 옮기는 특이한 결정을 했다. 일본 증시에 상장하기 위해서다. "한국과 미국, 일본에 동시 서비스를 하는 것이 전략입니다. 어느 한 군데서 성장해서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 진출이죠. 그런데 세 군데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한 곳이 일본입니다. 대기업들을 고객사로 맞으며 급성장했죠.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곳에 맞춰 일본 상장을 목표로 결정했어요."
일본 상장 목표를 세운 뒤 이 대표는 일본에서 상장한 기업들을 많이 만났다. "일본으로 본사를 옮기라는 조언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일본은 상장 심사가 까다로워 3년 치 회계 감사 기록이 필요해요. 올해부터 준비해서 2025년 상장 예정입니다."
그는 미국 상장보다 일본 상장이 오히려 낫다고 본다. "미국 증시에 워낙 큰 기업들이 많아 수천억 원 매출을 올리는 기업은 눈에 띄지 않아요. 상장 비용도 많이 들죠. 차라리 고객사가 많은 일본 증시에 상장해 주목받는 것이 매출 등 여러 면에서 도움 되죠."
카이스트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자연어처리로 석사 학위를 받은 이 대표는 졸업 후 SK텔레콤에서 4년간 개발자로 일했다. "그곳에서 2년 걸려 획기적 제품을 개발했는데 외부 컨설팅업체에서 경제성이 없다고 평가해 출시를 못 했어요. 2년간 공들여 개발한 제품이 무산되는 것을 보며 좌절했죠. 그래서 최종 결정을 직접 할 수 있는 창업을 결심했죠."
이왕이면 해외에서 창업하자는 생각에 2009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일본 게임업체 게임온에 들어갔다. "2년 동안 밤에 창업을 준비하며 검색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투자자들을 만났어요."
그때 1996년 국내 최초의 해킹 사건으로 포항공대 전산시스템을 쑥대밭으로 만든 '해커 전쟁'의 주인공이자 인젠, 태터앤미디어 등을 잇따라 창업한 1세대 벤처창업가 노정석 비팩토리 대표를 만났다. "카이스트 선배인 노 대표 제의로 2010년 국내에 다시 와서 데이터분석업체 아블라(현 파이브락스)를 창업했죠."
그가 설립한 파이브락스는 2014년 미국 모바일 광고업체 탭조이에 400억 원에 팔려 화제가 됐다. "당시 파이브락스는 세가, 반다이남코 등 일본 유명기업들을 고객사로 확보해 잘나갔어요. 그러자 미국 3개사에서 회사를 팔라고 제의했죠. 그중 가장 조건이 좋은 탭조이에 매각하고 거기서 3년간 부사장으로 일했어요."
그때 그는 AI를 공부했다. "당시 AI 열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2017년 지금의 회사로 두 번째 창업을 했어요."
그가 창업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팀 구성이다. "스타트업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10배로 증폭돼요. 일반 기업보다 훨씬 크게 와닿죠. 그래서 개인의 역량보다 팀의 역량이 중요해요. 개발은 곧 팀플레이거든요."
이 대표의 목표는 전 세계적 AI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AI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스타트업의 유전자(DNA)를 가진 AI 자회사들을 여럿 만들어 다양한 일을 해 보고 싶어요. 매출보다 영향력이 큰 회사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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