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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조선은 이 명석한 '최초의 여성'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세상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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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 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유언, 김명순(1896~1951)
"남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3개 말하시오."
이런 퀴즈 문제를 받아든다면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한국 사회의 정규 교육 과정 중에 있거나 혹은 다 이수한 이라면 몇 초 안에 어렵지 않게 3명의 이름을 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3개 말하라"는 질문을 받아든다면요? 대체로 '유관순' 정도만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EBS 다큐프라임 '여성백년사-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이하 여성백년사)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제작된 3편의 다큐멘터리 시리즈입니다. 여성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제약하던 100년 전 사회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그리고 이들의 발자취는 '페미니즘 백래시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여성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을까요.
상단의 시를 쓴 김명순은 한국 여성 최초로 문학계에 등단한 작가였습니다. 일본 유학 중 조선인 이응준(훗날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됐다)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회는 피해자인 김명순을 '부정한 여자'라고 낙인찍었고, 학업도 끝맺지 못한 채 조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1917년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로 등단한 그는 시와 소설, 희곡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김명순을 향한 남성 문인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펜을 이용한 공격은 계속됐습니다. 소설가 김동인은 김명순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왜곡해 '김연실전'이라는 소설로 펴내고, 평론가 김기진은 '김명순씨에 대한 공개장'이라는 글에서 성폭행이 그의 성격에 원인이 있다며 공개적으로 2차 가해를 합니다. 소파 방정환은 잡지에 김명순에 대한 허위사실을 게재한 일로 명예훼손 고소까지 당합니다.
자신을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는 조선 사회에 저항하며 끊임없이 시와 소설 등 글을 써내며 맞서 싸운 김명순은, 한평생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으며 결국 1951년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서 사망합니다.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라는 위 시의 구절에서 명석하고 재능 있는 최초의 여성에게 가부장적인 조선 사회가 얼마나 한 여성에 억압적이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강향란은 '쇼트커트'를 한 최초의 여성이었습니다. 오늘날 쇼트커트와는 조금 다른 단발 수준의 머리 모양이었지만, 조선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단발머리를 한 강향란이 남성복을 입고 경성 시내를 거닌 것이 신문(동아일보 1922년 6월 22일 자)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여성을 멸시하던 조선 사회는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며 여성성을 버린 그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강향란이 재학 중이던 배화학교는 '단발한 여자는 다닐 수 없다'고 하여 그를 퇴학 처분했습니다. 훗날 그는 중국 상하이와 일본 도쿄를 오가며 항일단체 활동과 '근우회' 등 여성 운동에 몸담았고, 부산에서 신문기자로 활약하기도 합니다.
7일 방영된 1부 '신여성 내음새'를 시작으로 2부 '직업 부인 순례(8일 방영)'에서는 '동양 최초의 여성 택시 기사' '한국 최초의 미용사' '데파트 걸에서 기자가 된 여성'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포기하지 않고 활약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100년 전 여성들의 일과 삶을 조명합니다. 3부 'N번의 잘못(9일 방영)'에서는 오늘날 디지털 성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여성들의 연대기를 담아, 100년 후를 살아가는 여성들을 향한 지금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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