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고 받으라고 할까 봐"...멜로니 이민자 거부에 유럽 '침묵'

입력
2022.11.09 00:10
수정
2022.12.25 15:1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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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니, 난민선 입항 완강히 거부
노약자 선별 하역으로 '인도적 조치' 명분만
유럽 각국 비난 못해...오히려 이탈리아 방식 따라할 듯

"불법 이민에 관용은 없다." 이민자에 대해 강경 대응을 예고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직접 옮기고 있다. 시칠리아섬 인근 해상의 난민 구조선 입항을 완강히 거부하면서다.

그러나 인권에 민감한 유럽 국가들은 이탈리아의 이런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있다. 선뜻 목소리를 높였다가 '이민자 수용'의 책임을 모두 떠안을 수 있어서다. 불법 이민에 대한 거부감이 유럽 전반에 확산하고 있는 것도 각국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독일 구호단체 'SOS 휴머니티'의 선박 '휴머니티1'이 이탈리아 시칠리아항에 정박 후 일부 인원을 내리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건강상 문제가 있거나 취약 계층인 경우'에 한해서만 하역을 허가했다. 시칠리아=AP·연합뉴스

독일 구호단체 'SOS 휴머니티'의 선박 '휴머니티1'이 이탈리아 시칠리아항에 정박 후 일부 인원을 내리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건강상 문제가 있거나 취약 계층인 경우'에 한해서만 하역을 허가했다. 시칠리아=AP·연합뉴스


"건강상 문제 있는 사람만 내려라" 선별 하역 '시끌'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현지 언론을 종합하면, 지난달 말부터 시칠리아섬 인근 해상을 떠도는 구호단체 소속 구조선은 총 4대, 여기에 탄 이주민은 1,075명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입항을 거부하다 최근 노약자 또는 부상자 등만 하선을 허락했다. '지오바렌츠'호에서 357명, '휴머니티1'호에서 144명이 약 2주 만에 땅에 발을 붙였다. 나머지 2대에도 같은 조치가 취해진다.

'부분 하선'은 이민자 수용에 거부감이 큰 멜로니 총리 작품이다. 바다를 건너 이탈리아로 오는 이민자 약 75%가 성인 남성이라, 이런 식의 조치는 불법 이민자 유입 감소에 큰 도움이 된다. 이민자 유입은 최소화하면서 이탈리아가 최소한의 '인도적 조치'를 취했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난민을 구조해 선박에 태운 비정부기구(NGO)들은 선별 하역도 "비인도적 처사"라고 이탈리아를 비난하고 있다. 받아줄 때까지 이탈리아 인근 해역에 머무르겠다고도 선언했다. 하지만 멜로니 총리는 떠나지 않으면 5만 유로(약 6,926만 원) 벌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왼쪽) 이탈리아 총리와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7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 참석을 계기로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영국 총리실은 밝혔다. 샤름 엘 셰이크=EPA·연합뉴스

조르자 멜로니(왼쪽) 이탈리아 총리와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7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 참석을 계기로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영국 총리실은 밝혔다. 샤름 엘 셰이크=EPA·연합뉴스


"너희가 데려가라"는데… 독일 등 "이탈리아 의무" 난색

난민 수용을 놓고 유럽 국가들 간 신경전도 벌어졌다. 이탈리아가 해당 선박이 소속된 독일∙노르웨이에서 이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지목받은 독일과 노르웨이는 "이탈리아의 의무"라며 난색을 표했다. 인접국 프랑스가 '일부 인원 수용 검토' 의사를 밝혔지만, 이 역시 이탈리아가 우선 수용한 뒤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멜로니 총리는 이를 거부했다.

유럽 각국이 이민자 수용에 소극적인 건, 반이민 정서가 유럽 전반에서 확산하고 있는 상황과 관련이 깊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스웨덴∙프랑스 등에서 '이민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고, 자국민 기회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하는 극우 정당이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고물가 등 경제 위기로 자국 우선주의 기류가 커지면서 이민자에 대한 거부감도 깊어졌다. 이민 문제가 각국 정치 지형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건, 이민자 수용 및 분배를 둔 유럽 내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인권에 눈감는다는 비판을 덜 받으면서, 이민자 수용 책임은 덜 지는 이탈리아 방식도 점점 더 많이 등장할 조짐이다. 최근 취임한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민자 유입 감소를 위해 해상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프랑스 등 다른 국가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7일 강조했다. 이탈리아 등 지중해 5개국도 '해협 횡단 중 사망자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출발지에서부터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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