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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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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칼럼의 주제를 '논어'에 나오는 '낙재기중'(樂在其中), 즉 "인생의 즐거움이란 자신이 열심히 하고 있는 일,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으로 정하였지만 쓸 수가 없었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대형참사 앞에서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같은 시간대를 공유했던 젊은 청춘들을 포함한 많은 희생자들에게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고,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의 아픔이 아직도 우리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또다시 닥친 비극적 사태 앞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허탈해하면서, 말문이 막혀 그저 하늘만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이런 아픈 마음은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아마도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어떤 형태로든 마음 한구석에 상처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한편에서는 비극적 참사가 우리에게 왜 또 반복되는지에 대한 의문과 안전조치를 제때 하지 않은 부실행정에 대한 불만과 분노도 교차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바로 다음 날, 가해자와 책임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워, 정부에서 '참사'에 대한 명칭을 '이태원 사고'로 통일하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로 쓰라는 조치를 내렸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마저도 저버린 결정에 마음이 더욱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해자와 책임의 소재를 묻는 법률적 시비도 따져야 하겠지만, 그러한 글자 놀음에 앞서 희생당한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과 예우, 그리고 배려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음에 대한 감사와 삶에 대한 희망, 그리고 고통의 극복을 위한 연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사람이면서 인(仁)하지 않으면, 예(禮)는 해서 무엇하겠는가?(人而不仁, 如禮何)"라고 말한다. 예(禮)라는 것은 사람의 관계와 기본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사회적 규약이고 규범이다. 이런 예(禮)는 반드시 인(仁)을 토대로 하여야 한다. 인(仁)이란 인간이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최고의 경지인 동시에 대상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이 빠져 버린 사회적 규범은 허위의식에서 나오거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식적 행동과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공자는 바로 허위의식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공자의 말에 비추어 보면, 정부에서 참사의 '희생자'를 '사고'니 '사망자'니 따지고 있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배려를 무시한 가식적인 행동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재난이라는 불행한 사태 속에서도 '문화의식'의 고양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인간을 도구나 수단이 아닌, 인간 그 자체로 보려는 노력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화의식의 고양을 통하여 인간이 인간다움의 실현을 모색하고, 불행한 현실을 보다 이상적 형태로 전환하기 위한 연대의 발판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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