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함과 굴종은 다르다"

입력
2022.11.0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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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도러시 데이

그리스도의 '자비'를 가장 급진적으로 실천한 가톨릭 사회운동가 도러시 데이. nationsmedia.org

그리스도의 '자비'를 가장 급진적으로 실천한 가톨릭 사회운동가 도러시 데이. nationsmedia.org


2018년 뉴욕시가 시 여성사 복원 작업의 하나로 거리와 공원에 여성 동상을 더 건립하기로 했다. 브라이언트공원의 거트루드 스타인, 리버사이드파크의 엘리너 루스벨트,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의 잔 다르크 등이 전부였다.

시민들은 공동체 도시재생에 힘쓴 도시계획가 겸 사회운동가 제인 제이콥스(1916~2006), 가족계획(산아제한)의 선구자 마거릿 생어(1879~1966), 인종·성평등 운동가이자 하원 첫 여성 의원으로 1972년 대선에 출마한 셜리 치점(1924~2005) 등을 추천했다. 배우 메릴 스트리프와 가수 마돈나도 명단에 있었다.

좌파 가톨릭 사회운동가 도러시 데이(Dorothy Day, 1897.11.8~ 1980.11.29)도 포함됐다. 그는 1933년 노동절(5월 1일), 대공황 실업자들이 모인 유니언스퀘어에서 자신이 만든 신문 ‘가톨릭 노동자(The Catholic Worker)’ 창간호를 배포하며 “낡은 껍질 속의 새 사회”를 위한 운동을 주창했고, 노숙자 쉼터 ‘환대의 집(House of Hospitality)’을 꾸려 운영했다.

보수교단과 정부(FBI)는 그를 거의 평생 ‘빨갱이(공산주의자)’라 의심했고, 공산당원들은 신을 믿는 회색분자라고 경멸했다. 확고한 평화주의자로서 베트남전쟁은 물론 냉전기 민방위훈련까지 반대해 ‘애국자’들의 손가락질을 받았고, 자본의 무한 탐욕에 맞서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의 존엄과 생존권을 변호했다.

가톨릭의 자비와 사랑에서 이념을 넘어서는 급진성을 발견하고 1927년 세례를 받은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못 보는 이들이야말로 무신론자”라 주장했고 “세상이 이리 된 것은 우리가 더럽고 부패한 사회 시스템을 상냥하게 받아들인 탓”이라며 복음이 전하는 ‘온유함’과 굴종을 구분했다. 2015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 의회 초청연설에서 세계가 깊이 되새겨야 할 가르침을 남긴 미국인으로 링컨과 마틴 루서 킹, 토머스 머튼과 함께 도러시 데이를 소개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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