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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광산 생환 광부 박정하씨 "질릴 정도 동료애...구조 포기 생각은 한번도 안했다"

입력
2022.11.07 10:30
수정
2022.11.0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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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광산 매몰됐다 생환한 작업반장 박정하씨
"헤드램프 꺼질 때 잠시 '희망 없다' 생각"
낙담 20분 뒤 발파 소리 들어..."생환 과정 드라마 같다"

경북 봉화군의 한 광산에서 열흘간 고립됐다 구조된 작업반장 박정하씨가 5일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에서 가족을 만나고 있다. 구조된 이들의 건강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주치의는 "수일 내 퇴원까지 할 수 있을 걸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경북 봉화군의 한 광산에서 열흘간 고립됐다 구조된 작업반장 박정하씨가 5일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에서 가족을 만나고 있다. 구조된 이들의 건강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주치의는 "수일 내 퇴원까지 할 수 있을 걸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깜빡거리던 헤드램프가 끝내 꺼지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입사 나흘째인 신참을 다독이며 열흘을 버텼지만 "희망이 없을 거 같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 진짜 공포가 엄습했다. 그렇게 20분이 지났을까. 발파 소리가 들리고 막 안전모를 썼을 때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보였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다 221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생환한 작업반장 박정하씨는 구조 직전의 광산 풍경을 이렇게 회상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6시경 광산 내 제1수직갱도에서 발생한 매몰 사고로 보조작업자 박모씨(56)와 함께 지하 190m에 고립됐던 그는 4일 오후 11시 3분경 극적으로 구조됐다. 발파 작업 직후 "형님!" 하며 광산으로 뛰어오는 동료를, 박씨는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는 "이제 살았다, (바닥에) 물이 있든 말든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박씨가 전한 생환 과정은 말 그대로 "연출된 드라마 한 편" 같았다.

광산 경력 27년의 베테랑 작업반장 박정하씨는 광산이 매몰되자 보조작업자 박씨를 데리고 대피소로 피했다. 발 빠르게 피한 대피소는 갱도 안에서도 여러 개 통로가 모이는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같은 곳으로, 면적이 100㎡ 이상으로 널찍했다. 낙석 때문에 지상으로 연결된 수직통로는 꽉 막혔지만, 갱도 내 가장 많은 통로와 연결된 공간으로 피한 덕에 모닥불을 피울 정도로 산소가 충분했다.

힘든 건 배고픔...구토해도 갱도 물 마셨다

봉화 광산 매몰사고 구조 상황.

봉화 광산 매몰사고 구조 상황.


박씨는 "가장 힘들었던 건 배고픔"이라며 "추위는 미리미리 준비를 해놓는 자재 덕분에 그렇게 좀 피할 수 있었는데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간식인 믹스커피 30봉은 더할 나위 없이 귀한 비상식량이 됐다. 박씨는 동료와 30봉을 한 번에 먹지 않고, 약 복용하듯 3일 치로 나눠 마셨다. 두 광부를 치료 중인 방종효 경북 안동병원 신장내과 과장은 "30봉지를 식사대용으로 먹었다고 한다"며 "10일간 굶었는데도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아 믹스커피가 상당히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챙겨간 물은 10리터, 벽과 천장에도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박씨는 "가지고 왔던 물의 3분의 1통이 떨어지면서 어떤 물을 마셔야 될까... 찾아다니다가 암벽 틈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물통을 대고 받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괜찮았지만, 후배 박씨는 구토를 하는 등 부작용을 보였다. 그는 "그래도 어떻게 하나. 목도 타고 아침, 점심, 저녁 시간으로는 꼭 그 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동료들이 구조를 포기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박 씨는 "광부들 동료애라는 건 다른 직종의 동료들보다 굉장히 더하다"며 "진짜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사람들인데, 질릴 정도로의 끈기 있는 인간애가 있다. 그래서 절대 그런(구조를 포기할 거란) 생각은 안 해봤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밖에서 "수많은 동료들이 고생했겠구나... 위로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매몰 전날에도 안전 점검...겉핥기식 고쳐야

경북 봉화 광산 매몰 사고 10일째인 4일 오후 광산구조대와 소방구조대가 고립된 광부 2명을 구조하기 위해 갱도 내부에 쌓인 암석을 제거하고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경북 봉화 광산 매몰 사고 10일째인 4일 오후 광산구조대와 소방구조대가 고립된 광부 2명을 구조하기 위해 갱도 내부에 쌓인 암석을 제거하고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강철 정신'은 매몰 열흘째 잠시 무너졌다. 헤드램프가 깜빡이며 꺼져 "눈뜬장님"이 됐을 때다. 사실 그 며칠 전부터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웅성대는 환청도 들었다.

"희망이 없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던 찰나, 발파 소리가 들려왔다. '또 환청인가' 싶었지만 일단 안전모를 썼다. 박씨는 "그때 꽝! 하면서 불빛이 보였다. '이제 살았구나'(싶었다). 그러면서 '형님' 하고 뛰어오는 동료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이때의 충격 때문에 요 며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는 "자는 도중에 소리도 좀 지르고 또 행동도 막 커지는 게 침대에서 떨어질 정도"라고 말했다.

박씨는 정부에 안전진단 현실화를 부탁했다. 그는 "대통령실 비서관이 왔을 때 부탁했다. 이 광산도 사고 나기 전날 관계기관이 안전 점검을 하러 왔는데, 바로 이튿날 이렇게 됐다. 보고서에 의해서(보고서만 보고) 안전하다 이렇게 평가를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안전한지 가서 두들겨보고 만져보고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이렇게 살아왔는데 저보다 힘든 분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힘내시고 열심히 사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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