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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쓰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청춘들

입력
2022.11.08 04:30
22면

<후보작 4>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편집자주

※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5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송지현 소설가 ©송주현

송지현 소설가 ©송주현

송지현의 인물들은 자주 운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숙취에 시달리고, 거침없이 욕을 하고, 죽고 싶다고 외친다. 그들은 망했거나 망해가는 중이다. 아니면 망했거나 망해가는 가족이 있다. 망했거나 망해가는 중이더라도 삶은 거기 있으므로 그들은 또 무얼 먹는다. 밴드를 하다 망한 나는 곧 망할 것 같은 청년몰에서 핫도그를 사 먹는다. 스님이 되겠다는 외삼촌과 고기를 구워 먹는다. 너무 매워 먹다 기절한 사람도 있다는 아귀찜을 엄마와 같이 먹는다. 이혼한 부모님과 이혼을 앞둔 언니와 함께 백숙을 먹는다.

아픔을 딛고 일상을 되찾는 서사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희망이나 위로로 읽힐 수 있다. 먹는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세계를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소재가 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송지현의 인물들은 먹고 마시지만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쉽게 낙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위악도 냉소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최대치의 냉소는 술을 마시며 “한치는 돈 아까운 줄 모르는 애나 시켜 먹는 것”이라는 따위의 말을 주고받는 것뿐이다.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그렇다면, 애를 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소설에서 느껴지는 이 에너지는 무엇인가! 나는 송지현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 지점에서 불쑥불쑥 놀란다. 분명 유쾌하고 거침없는 인물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슬픔이 뒤통수를 친다. 그 감정들은 늘 독자의 예측을 배반하는 타이밍에 찾아온다. 그런 타이밍을 찾아내는 감각은 단지 기술적인 능숙함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결합될 때 생겨난다.

단편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에서 뜨개방을 하는 이모는 이렇게 말한다. “힘을 빼. 실이 네 손에서 빠져나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쥐어. 꼭 쥐면 오히려 놓치는 거야. 대충 해.” 나는 이 말이 송지현이 자신에게 하는 다짐으로 들린다. 작가는 인물들의 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울 때마다 자주 저 말을 중얼거렸을 것이다. 인물들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으면 저 말을 속삭여 주었을 것이다. 저 말은 곧 송지현의 작법이 되었고 삶의 태도가 되었다. 작가의 태도는 인물들의 태도가 되었고 인물들의 태도는 소설의 태도가 되었다. 서사의 강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런 태도 때문이리라. 그 느슨한 구조 덕분에 빈 공간이 생겼다. 비어 있는 서사를 짐작하다 보니, 애쓰지 않는 인물이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애를 쓰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윤성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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