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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게임위... 전 게임위원장 "등급제, 성인까지 영향받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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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게이머들 사이 최대 화두는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다. 넥슨의 '블루 아카이브'를 비롯해 다수의 모바일 게임들이 등급제 재심의를 받아 기존의 자율 심의된 등급보다 연령대 제한이 상향됐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은 게임위의 심의 기준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자율심의된 등급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게임위는 1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쟁점을 해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게임위가 위기에 빠진 사이로 엉뚱하게도 게이머들 사이에서 갑자기 주가를 높인 인물이 있다. 김규철 현 게임위원장 바로 직전에 게임위원장을 맡았던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다. 이 학회장은 2018년 8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약 3년간 게임위원장으로서 임기를 소화했는데, 이때를 두고 "게임을 아는 참된 게임위원장이었다"는 '재평가'가 온라인 상에서 이어진 것이다.
지난달 25일 만난 이 학회장은 외려 전직 위원장 입장에서 현재 게임위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일각에서 폐지 주장이 제기될 지경에 놓인 게임위가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인해 게이머들의 오해를 사게 됐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등급제 기준을 시대에 맞게 조정하고, 게임을 잘 아는 인사를 게임위원으로 위촉할 필요가 있다는 게이머들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는 "게이머들의 즐기고 싶은 마음에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며 "청소년 보호를 목적으로 한 등급 규제에 성인 게이머들도 싸잡혀서 끌려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최근 등급 재분류 사건 때문에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블루아카이브'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우리나라의 게임등급제는 원칙 상으론 사전심의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와 독일, 호주, 중국, 태국 정도가 사전심의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는 가장 강력하게 적용이 되고 있다. 하지만 게임위에서 등급 분류가 필요한 게임이 1년에 대략 100만 건이다. 이 가운데 실제 게임위 심사를 거치는 것은 1,000건도 안된다.
그래서 민간 게임 플랫폼 사업자에게 '자율 심의 사업자'자격을 주고 심의를 자체적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게임위는 그 등급에 대한 사후 관리를 담당한다. 모니터링단이 200∼300명 정도가 배치돼 있는데, 여기서 모니터링을 하거나 민원이 들어오거나 해서, 민간에서 자체 부여한 등급과 실제가 다른 상황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등급 수정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된 부분을 수정해 달라고 업체에 공고를 한다. '블루아카이브'의 경우는 수정은 하지 않고 청소년 버전과 성인 버전을 구분해서 출시했다.
게이머들이 여기서 화가 난 것이다. 사실 이용자들이 무슨 잘못이겠나. 놀고 싶은 욕구가 있고, 자기들끼리는 잘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어와서 등급이 수정된다든가, 게임 버전이 달라진다든가 하면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게임위는 게임위대로 참 안쓰러울 때가 있다. 게임위는 게임산업진흥법과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침을 가지고 사후관리를 하는 곳이다. 재량권이 있는 것처럼 인식이 되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항상 법의 잣대를 놓고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다.
한편으로 이는 자율심의 시스템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자율심의로 가려면 민간 분류 사업자들이 기준을 잘 맞춰줘야 하는데, 기준을 실수로 못 맞출 수도 있는 것이고, 의도적으로 둘러갈 수도 있고, 사업자마다 등급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있다면, 게임위가 빨리 사후관리를 하고 시스템을 건전하게 하도록 해 줘야 한다. 그러라고 있는 것이 게임위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다. 봐야 할 건수는 수십만 건인데 인적 자원이 엄청나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임위가 인정하는 자율 심의 사업자는 삼성전자·애플·구글·원스토어·오큘러스·소니·마이크로소프트(MS)·닌텐도·에픽게임즈 등이다. 게임위에서는 통상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을 위주로 심사하고, 나머지 15세 이상, 12세 이상, 전체 이용가는 자율 심의 사업자가 심의해서 부여한 등급을 인정한다.
'블루아카이브'를 비롯해 여러 게임의 등급이 재분류된 것은 이 자율 심의 결과가 잘못됐다는 민원을 게임위가 검토해 규정에 따라 재분류한 결과였다. 여론에 불을 붙인 것은 이 '재분류' 자체였지만, 현재는 게임위의 등급 기준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이 후속으로 올라오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일단 현 제도 아래에서 대안을 찾자면, 자율 심의 사업자가 심의를 잘해주면 좋겠지만 최종 책임은 게임위, 그리고 게임위에게 그런 임무를 부여한 국가가 지는 것이 맞다. 국가의 업무니까, 게임위도 인력과 자원을 더 달라고 해야 한다. 국가도 사후관리를 시키기 위해 게임위를 만든 것이니, 인적 구성을 더 채워서 적시 심사와 재분류 조치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자율 심의 사업자나 게임 개발자들은 등급분류 기준을 숙지해야 하고, 게임위에서도 교육을 많이 시켜야 한다. 현실적으로 게임위에서 생각하는 게임위원들의 잣대와 게임 제작자의 잣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자체 등급분류 사업자들 가운데 우수한 사업자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하지만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등급분류 기준 자체도 개정돼야 한다. 나는 이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 고질적인 잣대로 계속 등급분류 기준을 세워 나간다면 우리나라 게임 자체도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행 등급 분류의 어떤 점이 문제인가.
현재 게임위의 등급분류 시스템이 만들어진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게임이 선정성과 폭력성 때문에 청소년 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이다. 둘째는 2006년 당시 터졌던 '바다이야기' 사태로 인해 불거진 사행성 문제다. 둘 다 결국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으로 언급이 됐고 그렇게 현재의 게임 등급분류제와 게임위가 탄생했다.
물론 청소년 보호 관점에서 등급제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과하지는 않다. 그건 정부의 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수의 게임 플레이어가 성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보호의 관점과 잣대를 중심으로 등급제가 적용되는 부분은 문제다. 성인 게이머에게는 가능하면 모두 자유롭게 열어주면 좋겠다고 본다.
현직 게임위원장 입장일 때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문화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만화(웹툰)나 영화에 비하면 게임쪽은 여전히 등급에 대한 관점이 보수적이다. 그런 것들이 게임 산업의 발목도 붙잡고 있다. 등급분류제에 관해서도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게임위원장일 때부터 게임법 개정 얘기가 나왔는데, 금방 개정될 줄 알았더니 아직까지 지지부진하고 있다.
-등급제 관련해서 게이머들은 국가 간 심의 기준의 편차가 있다는 문제를 많이 제기했다.
심의 기준은 국가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 문화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리나라가 굉장히 보수적인 편인 건 맞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일본은 선정성 면에서 상당히 유연한데, 미니스커트를 들추는 게임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통된다. 우리는 바로 청불(청소년 이용불가)이다. 미국이나 유럽 게임 같은 경우는 유혈 묘사가 문제가 된다. 한국에선 총을 맞았는데 피가 나면 청불이다.
-게임위원회 위원들의 게임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져서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게임위의 위원이 9명인데, 사회 각 분야에서 추천을 받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문화예술, 문화산업, 정보통신, 언론, 법률, 청소년, 교육 등등이다(게임산업진흥법 16조 4항). 그 위원들이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 심사를 맡는다.
그런데 각 분야에서 오더라도,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 오면 좋겠다. 게임 모르는 사람이 임명되니까, 보통은 전담하는 상근 연구원이 사전에 조사를 해서 심의 내용을 알려준다. 하지만 게임 모르는 법률가, 정보통신 전문가, 아동 전문가, 예술가가 자기가 가진 잣대로 내질러 버리는 때도 있었다.
-게이머들 가운데는 게임위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까지 나오는데, 전직 게임위원장 입장에서 그래도 게임위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면.
나는 등급분류 자체는 이제 게임위에서 안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사전등급제는 문화 발전을 저해한다. 민간 자율로 넘어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어쨌든 자율엔 책임이 뒤따라야 하고, 자율 심의에서 미비하고 불건전한 부분을 사후관리를 할 수 있는,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부 기관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게 게임위의 역할이 돼야 한다.
게임위 자체의 역할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고 본다. 게임위는 불법 게임을 오랫동안 잡아 왔는데, 지금 각광을 받고 있는 3차원 가상세계(메타버스)에도 사실 게임의 메커니즘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이 건전하게 질서를 잡아갈 수 있도록 사후 관리를 담당하는 것이 게임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본다.
최근 온라인에서 이재홍 학회장이 '게임을 아는 위원장'이라는 호칭을 받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게임전문 매체인 게임메카가 2019년 그의 퇴임을 앞두고 발행한, 그의 업무를 호평한 기사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시 돌면서 읽혔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2004년 출시 이래 지금까지 서비스 중인 다중 사용자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우)'를 직접 플레이해보고 그 내용을 분석한, 게임위에 들어가기 전의 학자 시절 한국게임학회지에 제출한 한 논문이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게임법과 게임위 얘기를 심각하게 하던 이 학회장은 와우 얘기를 할 때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사실 그가 게임의 서사를 강조하게 된 것도, 이 학회장 자신이 "서사와 게임성을 적절하게 결합했다"고 평가한 와우의 세계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 게임위원장이 호평을 받았던 비결은, 사실 그가 '와라버지(와우+할아버지)'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최근 갑자기 게임위원장을 할 때 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사실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내가 했던 업무가 지금 게임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규제로 주어진 선은 지켜야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도 외부에선 나를 "업계 친화적"으로 보는 분들이 많았다. 등급 기준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개별 게임 심의에선 경계선에 걸려 있는, 애매한 상황이 나타난다. 그렇게 미세한 차이가 있을 때는 웬만하면 업계에 힘을 실어주자는 얘기를 분명히 했다.
한편으로 나는 게임위원장이 되기 전부터 게임을 잘 알고, 거의 20년 동안 게임을 많이 해 봤다. 온라인게임이 나오기 전에는 패키지게임이나 콘솔게임을 많이 했다. 1990년대에 일본 도쿄대에서 문화 공부를 하면서 애니메이션과 영화, 게임을 주의 깊게 봤는데, 닌텐도의 '슈퍼마리오'를 하면서 공주를 구하겠다고 밤을 새우던 일도 있었다.
온라인 게임 중에서는 아무래도 와우(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많이 했다. 출시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왔고, 스토리나 퀘스트(임무)는 다 섭렵했다. 와우 내 양대 진영인 호드와 얼라이언스 양쪽에 모두 캐릭터를 만렙(캐릭터 레벨의 최종 한계)까지 올려놨다. 사실 박사논문도 와우를 중심으로 MMORPG를 다뤄서 썼다. 논문을 50개 정도 쓴 것 같은데 절반, 25개가 와우를 다뤘다.
-실제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와우의 퀘스트를 분석한 논문이 많이 언급됐더라. 짧게 설명을 부탁드린다.
그 논문이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논문이기도 하다. 와우가 최초 출시 이후 총 8번의 대규모 확장팩을 냈다. 그 가운데 다섯 번째가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인데, 그 퀘스트 1,025개를 폭력성과 비폭력성으로 나눠서 분석해 봤다. 그랬더니 죽이거나 때리거나 폭파하는 내용이 들어간 '폭력성' 퀘스트는 510개, 그렇지 않고 물건을 갖다주고 대화하는 등의 '비폭력성' 퀘스트는 515개였다.
이게 내가 와우에 매력을 느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비폭력성과 폭력성의 균형을 제대로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게임뿐 아니라 문화 콘텐츠는 교훈성과 유희성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교훈성이 너무 심하면 재미가 떨어지고, 유희성이 짙으면 상업적이 된다.
좋은 게임의 조건으로 게임성, 서사성, 균형 있는 주제성의 세 가지를 말해 왔다. 우리나라에도 서사가 풍부한 게임이 나오면 좋겠다. 서구 게임사를 보면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게임을 낸다. 온라인 게임도 와우 같은 경우 20년 가까이 장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강렬한 서사성 있는 게임이 잘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사실 게임의 퀘스트를 좋아한다. 와우에서 가장 감동을 느꼈던 것도 퀘스트였다. 게임 속에서 동부 역병지대라는 지역에서 '파멜라'라는 유령 아이가 내게 인형을 찾아달라고 한다. 거기서부터 파멜라의 삼촌과 고모, 아버지를 찾는 열두 개의 연속 퀘스트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쟁의 아픔과 가족애가 세밀하게 묘사됐다. 잘 만든 퀘스트는 게이머를 집중하게 만들어주고, 게임 속으로 끌어들여주고, 충성도가 높아지게 한다.
-게임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예를 들면 서사성이 극단적으로 낮은 아케이드 게임도 인기가 많지 않나.
단순하더라도 롱런해 가는 것은 결국 서사성이 있는 게임이다. 예전엔 '앵그리버드'와 '애니팡'의 예를 많이 들었다. 둘 다 비교적 단순한 모바일 게임이다. 하지만 앵그리버드엔 돼지들이 알을 빼앗아 가서 화난 새가 몸을 던진다는 스토리가 있다. 애니팡은 단순히 세 개의 같은 동물을 맞추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애니팡의 후속작 애니팡2부터는 부분적으로 서사가 포함됐다.
스토리가 많을수록 게임 안에서 할 거리가 많다. 캐릭터성, 사건, 배경, 이런 것들이 풍부해질수록 파생되는 놀이의 소재도 많아진다. 현재 최고 인기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도 한 판이 짧은 게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캐릭터별로 엄청나게 방대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보이지 않더라도 서사가 갖춰져 있으면 게이머들이 공감하고 몰입하게 돼 있다. 스토리란 것은 게임의 좋은 토양이자 거름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리니지'와 그 파생형 게임이 인기가 많다. 사실 최초의 원작 게임인 리니지에는 원전이 있었다. 또 지금의 리니지는 리니지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온 리니지를 흉내내는 아류 게임들을 보면 스토리와 퀘스트의 의미가 극단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그래서 게임업계에는 스토리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써달라고 얘기한다. 스토리가 IP(지적 재산, 게임업계에선 동일 세계관으로 전개되는 여러 개의 게임 프랜차이즈를 의미함)를 만들고, 그 IP는 게임이 한류 문화코드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닦아 나가는 거라고 말한다.
사실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본다. 한국 문화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 거기에 한 축을 담당하기 위해서 조그만 게임이라도 서사성을 장착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 내가 학교에서 계속 게임 속 서사를 가르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재홍 학회장은 게임위원장을 맡기 전에도 한국게임학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했고 자연스럽게 정부에 자문을 하면서 게임위원장을 맡는 데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추가로 한국게임정책학회를 설립해 초대 학회장을 맡았다.
-게임 연구라는 길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는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문화연구는 일본에서부터 시작했다. 일본에서 게임을 접하면서 새로운 디지털 산업이 문화 산업으로서도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당시 국내에서도 게임학이 시작되고는 있었지만 대부분 공학적 배경이고, 스토리나 인문학적 접근은 부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2000년에는 대학을 가지 못하고 아예 강남에 있는 게임학원에 가서 시나리오학 강좌를 처음으로 열었다.
2003년부터는 서강대 평생교육원에서 공학과 인문학, 예술이 포함된 게임 전문 과정을 개설했다. 처음에는 게임이란 것에 인식도 부정적이라 반발이 많았지만, 취업 면에서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지금은 500여 명 규모로 커졌다. 이후에 모교인 숭실대로 와서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게 됐다.
-최근에 다시 게임정책학회를 다시 만들게 된 이유는.
새 정부 들어서서 게임 관련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 그 분야에 좀 더 기여를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에 법인 허가를 받았고, 2주 전에 첫 총회를 했다. 지스타에서 게임위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공동으로 세미나를 하는 것이 학회의 첫 활동이다. 산업과 국가와 이용자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면서 정책 제안도 하고, 현안에 대한 공론화 역할도 할 것이다.
'호모 루덴스'란 말이 있다. 인간은 놀이하는 동물이란 뜻이다. 나는 게임이 의식주처럼 우리 삶에 필수라고까지 생각한다. 산업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잘 만들어진 게임은 거대한 부가가치를 형성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 인프라도 잘 돼 있고, 세계적인 수준의 두뇌를 지닌 인적 자원도 풍부해 게임 산업이 발달할 환경도 좋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게임산업을 우리나라 최고의 먹거리 산업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우리나라 경제의 힘은 제조업에서 오지만 제조업은 공급망의 문제가 있고 외래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그런데 게임 산업은 100% 우리 국민의 힘과 기술에 의해서 해외에 의존하지 않고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게임 산업이 한국의 핵심 산업과 성장동력원으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봉사하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이 학회장이 주목하는 장래의 '성장동력' 아이템은 '메타버스'다. 그는 메타버스가 필연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면 보상을 받는 게임의 문법을 반영하게 된다고 예상했지만, 현재 IT 업계가 주장하는 대로 메타버스를 게임과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게임업계의 또 다른 쟁점인 'P2E(플레이 투 언·게임을 통해 보상 획득)' 게임 합법화 논의에 대해선 사행성 측면에서의 부작용을 경계하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최근에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많이 강조하고 계신다. 게임과 메타버스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메타버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전체를 디지털 세계로 가져가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메타버스'라고 나오는 것들(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등)은 하나의 게임판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사실상 기존에 나온 MMORPG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진정한 메타버스가 구현되려면 하나의 '디지털 지구'가 탄생해야 한다.
물론 메타버스의 문법은 게임의 문법을 차용할 것이다. 임무를 수행하고 경쟁하고 보상을 받는 게임의 메커니즘, 즉 '게이미피케이션'이 메타버스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메타버스 그 자체를 게임으로 간주해 버리면 메타버스도 망하고 게임도 망한다. 메타버스에서 대체불가능토큰(NFT)과 블록체인 보안 기술 등을 활용하는 가능성을 다 사장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P2E 게임' 도입 역시 메타버스와 연관해서 이뤄지는 것은 안 된다. 현재의 제도로서는 게임만 아니라면 NFT나 가상화폐와 연결되더라도 별 문제가 없지만, 게임을 플레이하고 획득한 아이템을 NFT나 가상화폐로 바꿔서 현금화하면 사행성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규제하에서는 그렇지만 게임업계 일각에선 그 제도를 바꾸고 싶은 것 같다. P2E를 통해 게임과 가상화폐 시장을 직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보인다.
국가와 업계와 이용자의 합의점이 필요한 부분이라 본다. 나는 P2E를 하더라도 건전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이머는 게임의 보상을 좋아하지만, 그 보상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게 되면 사행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보상을 얻는 재미는 일반적으로 아이템을 받는 것으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
현재 아케이드(오프라인 게임장) 쪽에서 미국식 '리뎀션 게임(점수보상형 게임장)'을 시범운영하고 있다. 여기서는 게임을 하고 포인트를 쌓는데, 그 포인트를 업장 내에서 인형 같은 경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일본식 파친코로 가버리면 사행성이 될 수 있다. 포인트를 업장 내에서 상품으로 바꾸면 도박이 아니지만, 그걸 밖으로 가져가서 현금화하면 그건 도박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식 리뎀션 제도는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행성 게임과 순수한 게임 사이의 중간 단계 모델을 업계에서 제시하고, 게이머들이 이 정도 보상이라면 기분 좋게 가져갈 수 있다고 합의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파친코가 돼선 곤란하다.
한편으론 포인트나 게임 속 아이템을 현금화해 거래하는 것은 처벌을 강화하고 확실하게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게임위가 자치경찰과 연계해서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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