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소싸움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새롭게 개최된 대회명은 소싸움 대회 대신 '소 힘겨루기' 대회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청도에서 시작한 소싸움을 시작으로 전국 11개의 자치단체에서 소싸움 대회가 열리고 있다. 격리해제 후 대회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운영사의 설명 아래 눈을 부릅뜨고 뿔을 맞댄 소의 사진이 있었다.
오래전, 여행 프로그램 방송출연으로 방문했던 인도네시아의 물소 대회가 떠올랐다. 발리에서 열리는 물소 경주였다. 현지 코디네이터는 발리의 물소 경주는 중요한 전통이라 설명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추수한 벼를 옮기는 데 물소와 마차를 이용했고, 동네 사람들도 물소와 함께 운반을 했으며 농사를 마친 논에서 벌어지는 작은 동네 행사였단다. 초기에는 상금이 없었지만 지금은 큰 상금이 걸린 연중행사로 전국에서 참여한다고 했다. 열심히 훈련을 시킨 물소와 사람들이 1등을 하기 위해 모이고, 대회를 보기 위해 인도네시아 전역은 물론 해외에서도 여행객과 사진작가들이 온다고 했다.
새벽안개에 싸인 공터에서 만난 소들은 저마다 정성스레 치장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소를 닦고 화려하게 꾸며주고 있었다. 처음엔 순수하게 이걸 보게 된 것을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소들의 각양각색 치장도 어여뻤고, 정성껏 치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소를 아끼는 마음이라 생각했다. 한 해의 농사를 함께 짓던 물소와 사람, 그들의 팀워크를 기대하며 '마을 잔치' 같은 경주를 상상했다. 하지만 나의 순수한, 아니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소들은 사람을 태우고 전력을 다해 달렸고, 결승선에서 도달하는 소들은 눈이 희번득거리며 게거품을 문 채 달려오고 있었다. 승패가 갈리고 지나가는 소의 뒷모습을 보자 비명과 함께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쉼 없는 채찍질에 소들의 엉덩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경기에서 진 어떤 소는 주인에게 주먹세례를 맞기도 했다. 생지옥 같았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전통일까. 큰 상금과 화려한 치장 뒤에서 소들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더 속도를 내기 위해 못을 박은 채찍을 쓰고, 경기에 졌다고 주먹질을 하는 것이 전통일까.
현재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 제8조에는 도박, 광고, 오락, 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한다. 그런데 농림축산부령으로 정한 소싸움 경기는 이 조항의 예외인 경우에 해당된다. 소싸움 대회는 20분 동안 뿔을 맞대고 힘을 겨루는 대회다. 먼저 도망치거나 무릎을 꿇는 소가 지게 된다. 한 마리가 질 때까지 계속 뿔을 박고 찌른다. 싸움이 격해지면 뿔에 찔려 피를 흘리거나 살이 찢긴다. 잘 싸웠던 소도 늙어서 쓸모가 없거나, 나이와 관계없이 뿔을 다치면 헐값에 도축된다.
소는 본디 초식동물이다. 옆에서 나란히 풀을 뜯고 있어도 서로 굳이 충돌을 만들지 않는 온순한 성향을 가졌다. 동물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이 동물의 고유한 정체성을 무시한 전통은 전통이 아닌 학대다. 동물학대의 모든 조건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전통으로 보호받을 이유는 없다.
사회 전반에 걸친 동물 친화적인 변화도 받아들여야 한다. 발리에서 만난 화려한 치장 뒤에 피를 흘리는 물소도, 힘겨루기를 하기 위해 뱀탕을 먹고 싸우는 한국의 소도, 그 소들을 보면서 환호하는 사람들보다는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을 것이다.
불편하고 언짢은 기분,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은 피하고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존재라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근본적으로 같은 선상에 있는 생명체라는 인식이 더 보편적 정서다. 시대가 변하면 전통도 변한다. 시대는 변한 지 이미 오래다.
댓글 0